우리가 놓았던 것들
"손 잡고 가야지"
"네, 아빠."
아들과 길을 걸을 때면 자연스럽게 아이의 작은 손을 잡는다. 따뜻하고 보드랍고, 아직은 세상에 닳지 않은 손. 종종 내 손을 뿌리치고 쪼르르 달려가기도 하지만, 다시 부르면 순순히 손을 내민다. 그 작은 손을 꼭 쥐고 나란히 걷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다.
얼마 전, 아내와 단 둘이 있게 된 날. 문득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 손끝이 멈칫했다. 연애 시절에는 자석처럼 떨어지지 않던 손이었는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졌을까. 그때 깨달았다. 나는 아내의 손을 너무 오랫동안 잡지 않았다. 가장 익숙했던 손이, 잡지 않으니 낯설어졌다.
아들과 다닐 땐 손을 잡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보호해야 하니까, 놓치면 위험하니까. 하지만 아내와는 달랐다. 어느새 손을 잡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잡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합리화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손을 잡는다는 건 단순한 스킨십이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는 일이라는 걸, 나는 오랜만에 손을 잡고서야 다시 깨달았다.
누구나 연인을 사귈 때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색하게 지내다가도 손을 잡는 순간, 두 사람의 거리가 놀랍도록 가까워진다. 손 하나 닿을 뿐인데, 말보다 더 많은 것이 전해진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잊고 살았다.
우리는 손을 잡을 필요가 없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어쩌면 그 반대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아내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느꼈다. 평소와 똑같은 대화였지만 손을 잡고 있으니 그녀의 목소리가 몸 안 깊숙이 울려 퍼졌다. 그녀의 감정도 살며시 스며들었다. 우리가 놓고 있었던 건 손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모든 순간이 소리없이 천천히 메말라 가고 있었다.
아내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아들 손만 잡다가 여보 손 잡으니까 갑자기 낯설더라."
아내는 손을 빼면서 조금 부끄러워했다.
"그래. 핸드크림 안 발랐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아내는 내 손을 보며 우리가 처음 손 잡은 순간처럼 앳된 미소를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아내의 손을 잡아본다. 아들과 함께 있는 순간에도,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는 저녁에도. 그냥, 이유없이. 처음엔 어색해하던 아내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하며,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녀가 예전보다 조금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