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을 자유
"어른이 되면 제일 먼저 뭘하고 싶어?"
"난 어른 되면 술이랑 커피 마실거야!"
아들이 외쳤다. 너무 당당해서 웃음보다 놀람이 먼저 튀어나왔다. 마치 짠 것처럼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순간 뒷통수가 뻐근해졌다. 우리가 무심코 쌓아 올린 일상의 풍경이 아이에게는 저렇게 보였다니.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커피를 끓인다. 마치 하루를 작동시키는 주문처럼. 텀블러는 마법지팡이처럼 하루종일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또 우리집 간식 겸 부식 창고 수납장에는 다양한 커피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아들은 카페에 가면 아이스크림도 먹고 빵도 먹지만 아내는 늘 커피를 시킨다. 이런 모습들이 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아빠는 또 어떤가. 엄마의 커피가 일상의 동반자라면, 아빠의 술은 반가운 손님이다. 아무 잔에나 마시는 물이나 음료수와 달리, 투명한 유리잔을 경건하게 꺼내든다. 짠-하고 소리를 울리면 마치 어른들의 세계를 열어주는 입장음 같았다. 또 가끔 취하면 평소와 다른 들뜬 모습으로 놀아주곤 한다.
아들의 눈에 비친 커피와 술은 특별한 존재다. 음식은 바뀌어도 어른들의 곁에는 언제나 커피와 술이 맴돈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는 허락되지 않으니, 마치 금지된 마법 주문처럼 아들의 작은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어쩌면 술과 커피에 대한 아들의 갈망도, 최근 겪었던 '탄산음료 소동'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어느날 엄마와 키즈카페에 다녀온 아들은 매우 흥분해서 탄산음료를 마시게 해달라고 했다. 아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사이다'를 같이 간 친구가 마셨기 때문이다. 아들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탄산 음료를 맛보게 해주었다.
"진짜! 목이 따까워! 악! 큭!"
아들은 목이 따갑다면서 기뻐했다.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금기를 깬 후 탄산음료에 대한 갈망은 확 식어버렸다. 그 이후에는 탄산음료를 꺼내들어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술과 커피도 맛으로 보면 그런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금 허락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아들도 커피나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겪는 것처럼 커피는 일찍 접할 수 있고, 어른이 되기 전에 술도 몰래 마셔볼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도 어른의 문턱에서 자유를 얻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결국 스스로 올바른 길을 찾아가리라 믿는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안 해도 되는 자유를 아는 일이다. 아이가 언젠가 하지 않을 자유를 얻기까지, 우리 부부도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되어여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번주는 딱 한 번만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