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병렬적 나열

<룸 넥스트 도어>를 보고

by 밤개

<룸 넥스트 도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비극을 마주하고 있다.

마사는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전쟁 상황을 오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끔찍한 장면들을 목격했다. 세계의 비극을 전달하는 일을 끝낸 후에는 암이라는 개인적인 비극을 마주하게 되었다. 암투병을 하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희망을 걸기 어려운 날들을 보냈다.

잉그리드는 친구의 안락사를 함께 해야 한다는 비극적 상황에 놓여 있다. 아픈 친구의 입장을 생각했을 때에는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이긴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죽음을 방관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기에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사는 자신이 언제 안락사를 선택할지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았고, 자신이 죽음을 선택한 날에 방문을 닫아두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잉그리드는 마사와 함께 지내는 시간동안 매일 오늘은 그녀의 방문이 닫혀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마사의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녀와 함께 생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잉그리드에게는 슬픈 비극이었을 것이다.


잉그리드, 마사와 연인이었던 데미언의 경우에도 환경 보호를 위해 끝없이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이제는 노력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를만큼 심각하게 오염된 지구를 보며,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환경 보호에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었다.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오염과,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를 겪으며 데미언은 무력감을 느꼈다. 심각한 지구의 상황에 귀기울이지 않는 이 세상이 그에게는 비극이었다.

틸다 스윈튼의 깜짝 1인 2역으로 등장한 마사의 딸은 평생을 자신의 아빠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아빠를 찾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했고, 엄마인 마사와는 끊임없는 갈등을 이어가야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보니 아빠가 없었고, 어쩌면 아빠를 찾음으로서 자신이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을 그녀에게 아빠의 죽음으로 그를 평생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비극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지옥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행복해보이는 사람도 저마다의 고통이 있고 걱정거리가 있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이해하지 못했던 상대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저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너무 힘들고, 우울하고, 이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기운이 나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느껴질 때, 신기하게도 이 말이 나에게는 꽤 위로가 됐다. 나만 이렇게 힘든게 아니겠지, 저 사람도 나름의 걱정이 있겠지, 그럼에도 다들 꿋꿋히 살아가는 거겠지,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조금은 위안이 됐다.

사람들은 날마다 각자의 싸움을 하며 살아간다. 상대와 내가 하는 싸움에 접점이 없더라도,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병렬적으로 보여진 개개인이 가진 비극, 각자의 싸움을 보며 '삶'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하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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