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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글 Jun 05. 2020

출판사 편집자로 일을 시작했다

내가 출판사를 그만둔 이유#2

그렇게 출판사에 발을 들였다. (이전  참고!) 


국문과도, 문창과도, 어떤 출판 학교도 나오지 않은 내게도 어찌어찌 출판사의 문은 열렸다. 제목을 이렇게 지어 붙이니 얼마 전의 일인 것 같지만, 4년 전 일이라 중구난방의 글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막내였던 나는 출입문과 가까운 자리를 부여받았고, 내 책상에는 이런 것들이 놓여 있었다. 각종 빨간펜들, 열린책들 편집매뉴얼, 쪼만한 사이즈의 모니터, 모든 자리의 내선전화가 표시된 전화기(왠지 멋있었다!), 그리고.. 출입문을 여는 리모컨 버튼 같은 것들.


가장 처음으로 기억나는 일은 이런 것들이었다. 막내에게 주어지는 잡무들, 이를테면 사장님의 공간을 쓸고 닦는 일, 사장님 맞춤 믹스커피 제조법, 나무에게 줄 물을 받는 일 등등.... 이런 것들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기억나는 업무 같은 업무는 이것이었다. 국립국어원에 들어가서 한국어문규범을 띄워 놓고 프린트한 일. 아마 사수가 처음으로 내린 업무였던 것 같다. 2n 년 평생 읽고 쓰는 데에 크게 신경 쓴 적 없던 각종 맞춤법은 편집자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이런 사람도 편집자가 될 수 있다니!)


앞서 이야기했던 기획/편집/마케팅이라는 선택지에서는 편집의 길을 걷게 됐다. 출판사마다 다르긴 한데, 내가 일을 시작했던 곳에서는 편집이 주였다. 기획과 마케팅은 사장님의 영역이었던 것..! 아무튼, 편집의 기본 바탕이 될 교정교열은 그렇게 익히기 시작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은 내게 첫 원고를 안겨주셨다. 배부받은 원고를 읽으며 오탈자와 맞춤법에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 고쳐나갔다. 각종 각주나 요소들이 제 위치에 달려있는지 확인하고, 목차나 개요도 꼼꼼히 살폈다. 중간에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a2사이즈에 펼침면으로 원고가 앉혀진 종이를 펄럭이며 들고 하루에도 사수에게 몇 번이고 달려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귀찮았겠다 싶다.


참, 업무 분위기는 정말 정적이다. 사그락 사그락,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들리고, 어쩌다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아니면 다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독서실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졸기도 했더랬다. (시간이 멈춘 것 같잖아..)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훑고 나면, 조판을 담당하는 디자이너에게 수정을 요청드린다. 수정 파일이 나오면 수정 내용이 제대로 적용이 되었는지 대조하는 과정을 거쳐 다음 교로 넘어간다. 그렇게 서너 번 반복..  


뒤죽박죽의 기억이지만, 내가 배운 편집 일은 이런 식이었다.


그건 그렇고.. 각종 행사나 다른 업무에도 편집자의 노동력은 동원된다. 그때는 오프라인으로 책을 팔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 가져갈 책 목록을 작성하고, 밴딩 작업을 해서 사장님 차에 싣고, 행사장에는 아침 일찍 도착해서 책을 풀고(와, 벌써 힘들다!) 고객 응대와 판매, 계산 같은 것들을 했더랬다. 어쩌다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잡히면 모객도 하고. (꽤 큰 행사였는데, 주최 측 사람인지 큰 카메라를 들고 와서는 코앞에서 내 사진도 여러 장 찍어갔다. 어디 있을 텐데 그거..)


책이 출간되면 출간 소식을 알리는 블로그 글을 올리고, 구간 홍보용 카드 뉴스 제작을 하거나 출판사 일상을 담은 글을 쓰는 등 온라인상으로 이루어지는 편집 이외의 일도 종종 맡았었다.


믹스커피 타는 일부터 편집의 기본 업무, 각종 행사 참여, SNS 관리 등등. 작은 출판사에서의 편집자 생활은 전방위적이었다. 그에 비해 작고 귀여운 월급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생활이 가능했었는지 참.. (이건 말할수록 속상하지만, 누군가 편집자를 꿈꾼다면 꼭 알아야 하는 부분이다.)  


다행히 견딜 수 있었던 걸 꼽자면, 가족같이 도란도란 지냈던 분위기. 막내였기에 다 같이 부둥부둥 해주셨더랬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오면 일어서서 한 바퀴 돌아보라는 편집장님의 긍정적인 에너지도 한몫했다. (평소엔 카리스마 있는 프로시지만, 이런 일이 있으면 소녀처럼 짝짝 박수도 쳐주시고, 더 기뻐해 주셨던 편집장님이었다. 잘.. 지내시죠?)


그렇게 편집자로서의 길은 순탄한 것처럼 보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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