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경단녀의 자격

(15) 사회복지사 vs 보육교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말입니다.

by 돌콩
그러니까, 내가 전부터 따라고 했잖아. 그때가 언제야. 그때 시작했으면 벌써 따고도 남았지.


오랜만에 만난 동네 언니가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언니를 알게 된 것은 아들이 합창단 활동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러니까, 합창단의 학부모로 알게 되어 아이들이 노래 연습을 하는 동안 ‘대기’ 상태로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게 되었고, 그러다 친해지게 되었다.


언니는 마흔다섯이 넘은 나이에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고, 현재 초등학교에서 돌봄 전담사로 일하고 있다. 당시 일을 하고 있지 않은 나를 안타까워하면서, 지금이라도 보육교사나 사회복지사를 따 두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했더랬다.


언니의 말에 정말 그래야 하나, 고민이 되어 자격증을 검색해 봤더니 취득하는데 기간도 오래 걸리고, 인강을 듣는데 백만 원 이상이 들더라.


나중에 그걸 직업으로 삼을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덜컥 큰돈을 들여 (백수 주부에겐 꽤 큰돈으로 생각되었다) 공부를 한다는 게 고민이 되어, 나는 시작하지 못했다. 그런 관계로 언니와 인연을 몇 년째 지속하고 있지만, 내 고민은 늘 비슷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만나자마자 언니의 잔소리가 시작됐던 그날은 학부모 다섯이 모였는데, 하필이면 셋이 사회복지사나 보육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매번 만날 때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뭔가 좀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겠다. 생각했는지 언니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나 보육교사 자격증 따 두는 것 괜찮다니까! 앞으로 쓸모가 있을 거야, 야 너도 할 수 있어.~


언니의 말이 저녁을 먹고 난 뒤에도 계속 생각났다. 그날 밤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자격증 중 하나는 정말 따 둬야 할까, 그럼 난 관련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아이를 돌보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잘 맞을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밤을 꼴딱 지새웠다.


어떤 날엔 보육교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해 보려고 인터넷 강좌를 뒤져보고, 어떤 날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검색해 보고, 그러다 어느 날엔가는 내일 배움 카드라도 만들어두자~ 싶어 카드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백만 원이 훌쩍 넘는 강의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깝게 지내는 작가 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버스로 20분 거리에 살아 일주일을 멀다 하고 점심 먹자며 전화를 하던 언니가 요즘 좀 뜸하다 싶었다. 그런데, 세상에 말도 없더니 보육교사 강의를 듣고 있단다.


뭐야, 말도 없더니.
나도 갑자기 신청했어. 애들이랑 얘기하다가 더 늦기 전에 하려고. 카드 할부 했지 뭐~


언니는 나보다 세 살이 더 많다. 그러니 정말 내일모레가 오십이다. 그러니 주저하기엔 시간이 없다는 게 언니의 생각이었다.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두 가지 자격증을 놓고 언니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최종 결정을 보육교사로 한 건 언니가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공부하려고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으니 쉽지가 않더라고 언니는 하소연했다.

어쨌거나 시작한 용기와 결단력에 나는 박수를 보냈다.



어느 날, 언니가 갑자기 SOS를 했다. 실습을 나가게 되었는데, 교구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구를 직접 만들어야 해?
어, 내 돈으로 만들어야 해. 심지어 나 실습비도 내야 한다?


어린이 집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실습을 나가고 있는데,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내면서 일을 한다니,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다. 실습교구까지 자체 제작을 해야 하는데 똥손이라 혼자서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손으로 만들기를 잘하는 나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KakaoTalk_20231015_111218699.jpg 보육교사 실습 중인 언니와 만든 '빨래판 악기'


언니를 도와 나는 준비물을 사고 만들기를 시작했다.

언니가 선택한 교구는 빨래판 악기였다. 생각보다 굴곡진 빨래판을 포장하는 일은 쉽지 않아 시행착오를 좀 겪었다. 저녁 8시에 만들기 시작한 교구는 밤 12시를 훌쩍 넘겼다. 만들고 나서 완성작을 쪼르르 한데 놓고 보니 뿌듯했다.


거 봐, 너랑 맞다니까. 너도 보육교사 자격증 따~



언니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어질러진 방을 치우다 보니 사회복지사나 보육교사 자격증은 이 시대 중년, 경단녀의 필수 자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너나 할 것 없이 자격증을 따는데, 내가 그 자격증들을 딴다고 해서 과연 설 자리가 있을까? 생각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보육교사는 싫다. 나는 아이 돌보는 게 싫다!


아직은 덜 초조한가 보다. 결정장애인 내가, 언니처럼 내일모레 오십을 앞두고 있다면 그래서 고민할 여유도 없는 나이가 되면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몇 년 전 시작을 했더라면 지금은 관련 일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들이 되돌이표처럼 반복되었다. 에랏 오늘밤도 일찍 자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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