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쓰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월, 화, 수, 목, 금 매일을 4시간씩, 7주간이나 이어지는 빡센 강의고, 지각이나 결석도 꼼꼼하게 관리한다. 말이 4시간이지 교통편이 불편한 우리 동네에서는 버스가 거의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있다 보니 오 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하루 7시간은 족히 투자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신청할 때 일정을 꼼꼼히 읽지 않은 내 잘못이 크지만, 한마디로 '물고기 판매하는 인력'이 되는데, 내 시간을 이렇게까지 투자해야 하는 일인가 싶었다.
공교롭게도 수업을 듣는 장소가 지은 지 꽤 오래된, 외관상 거의 허물어져 가는 영화관 건물이었다. 지하철역이 코앞이라 가끔 지하철이 통과할 때면 지진이라도 난 듯 건물이 우르르 떨려 겁이 나곤 했다. 이런 건물에, 24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강의 실에서 물고기 판매와 관련한 마케팅 수업을 들어야 하는 첫날에는 시작부터 우울감이 몰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내 눈에는 무능력해 보였다. 취업이 안되어서 어떻게든 취업을 해 보겠다는 의지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다. 오죽 능력이 없으면 시에서 마련한 일자리 교육에 다 참석했을까 싶었다. 정작 나 자신도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말이다.
첫날 짝꿍이 된 남자는 20대로 보였다. 키는 작고 통통한 몸에 머리는 어깨까지 길었다. 영어가 적힌 살짝 촌스러운 셔츠를 입고 앉은 그 모습은 마치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사람 같았다. 소통이라곤 안될 것 같은 그이가 과연 손님을 상대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내 오른쪽에 앉아있는 사람은 통아저씨처럼 날씬한 몸매를 가진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귀에 검은색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해골 문양이 그려진 여름 점퍼는 몸에 착 붙어 날씬한 몸을 더 젓가락처럼 보이게 해 주었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라고 했다. 피어싱에 해골문양 옷을 입고 취업을 위한 강의를 듣고 있는 애아빠라니. 나는 속으로 저 사람은 아직 철이 없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일 거라 규정해 버렸다.
그동안 내 삶에서 나는 꽤 첫인상으로 사람 파악을 잘하는 편이었다. 첫인상에서 아닌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아니더라.
왜 이들 틈에서 내가 직업교육이란 걸 받고 있어야 하는지, 나름 전문직 여성이었던 내가, 왜 스스로 재취업을 할 수 없어 이런 일자리 교육을 듣고 있는 것인지, 속이 상해서 첫날에는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울어버렸다. 그래도 며칠은 나가 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3일을 수업에 나갔다가 목요일 에는 구역 모임을 핑계로 결석을 해버렸다. 그리고 아예 금요일까지 쭉 쉬어 버렸다.
그 쉬는 동안, '딱 한놈만 걸려라'하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마구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소득 없는 시간이 흘러 월요일이 되었고, 나는 이왕 시작한 거 그냥 배워보자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꾸역꾸역 매일 버스를 기다리고, 4시간의 수업을 받았다. 그러다 2주가 지나고, 서로의 얼굴에 익숙해질 때 즈음 나는, 나의 첫인상이 이번에는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완전 외골수처럼 느껴졌던 그 긴 머리 청년은 2주 만에 인싸가 되어 있었다. 그는 가끔 향기로운 꽃차를 가져와 손수 타주기도 했다. 어떤 날은 마술쇼를 보여주기도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관심받는 걸 즐겼다. 게다가 손금은 얼마나 잘 보는지, 쉬는 시간마다 사람들이 그 청년 앞에 줄을 섰다지. 어느 날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나타난 그 청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둠의 그림자를 싹 거두고 미소년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나이를 먹으니 내 눈도 머리도 명석함을 잃어가나 보다 생각했을 즈음, 해골 점퍼의 정체도 밝혀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이 구역 전문가였다. 관상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심지어 관련 물품을 상품으로 까지 만든 '업자'였다. 실전으론 빠삭하지만 한 번도 체계적으로 이론을 공부한 적이 없어서 수업을 듣는 중이라고 했다. 심지어 본업이 있는 말하자면 무능력자가 아니라 능력자에 속하는 이였다.
현직 군인으로 10여 년 일하다 사회로 나올 준비를 하면서 관상어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온 사람, 미대를 나와서 아쿠아리움 레이아웃에 관심을 가지고 수업을 들으러 온 사람, 물고기 관련 동화책을 내고 싶어서 관상어 공부를 하러 온 사람... 루저로 가득하다 생각했던 교실 안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내 예상을 빗나가는 이들이었다. 그 교실 안의 가장 찌질이는 그러니까, 함부로 사람을 판단했던 나뿐이었고.
솔직히, 네가 뭐 그리 고귀하고 특별한 일을 했던 건 아니잖아?
친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과거에 네가 무엇을 했건, 사람 다 똑같다고. 너는 뭐 고상한 일을 했냐고. 너는 뭐가 잘나서 그 사람들을 저울질하고 함부로 판단하냐고.
친구의 뼈아픈 충고를 듣고 나니 처음에는 살짝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내 나는 꼬리를 내리고 나의 편협한 사고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아마도 나 스스로 고귀하고 잘나신 몸이라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세일즈라는 일이 하찮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일을 배우는 것이 속상하고 함께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뭔가 없어 보이고 말이다.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따지고 보면 친구 말대로 내가 했던 일이 그리 고상한 일도 아니었거니와, 그랬다고 한들, 지금은 뭐? 나이 먹은 경단녀일 뿐이면서, 뭐 그리 잘났다고! 내가 나이를 헛먹었지.
관상어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나는, 어이없게도 '관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관상도 볼 줄 모르면서 첫인상으로 사람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그러는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첫인상으로 비쳤을까? 사람도, 일도 겪어 봐야 안다. 그러니, 이번 교육도, 사람도, 묵묵히 겪어 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