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내 생애 첫 취업박람회를 가 보았습니다. 강제로!
이번에 몇 군데 면접 볼 거예요?
뒷자리에 앉아있는 언니가 물었다.
오잉? 면접이오?
수업이 지루해 며칠 결석을 했더니, 그동안 취업박람회 공고가 안내되었나 보다. 며칠 후 취업박람회를 가게 되는데, 시 일자리센터 담당자가 가능한 한 두 개 이상은 면접을 봤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강의실 뒤쪽 벽에 붙여져 있는 몇 개의 구인공고를 살펴봤다.
하...
한숨이 났다. 도대체 이런 조건의 일자리 면접을 내가 왜 봐야 하는 거지?
나는 순간 모른 척하고 싶었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 A회사가 어떨까, B회사를 면접 볼까 고민하는데, 나 혼자 커피나 마시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콧대를 높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경력과 상관없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겠다고 이 수업을 듣고 있으면서도, 취업이라는 두 글자가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지다니.
그래도 하루 수업을 대체하여 취업박람회를 찾아가는 것이므로 결강을 하지 않으려면 취업박람회를 무조건 가야 했다.
박람회 전날, 나는 고민하다가 면접도 경험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면 다양한 면접을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나? 그러다 또 딱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그리하여 나는 면접에 참여하기 위한 이력서를 뽑아두었다. 칼라로 깔끔하게.
취업 박람회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 시에서 교육 중인 학생들이기에 우선적으로 면접의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고민하다 키즈 카페와 호텔 사무직 면접을 보기로 했다.
먼저 키즈카페는, 어린이와 관련된 교육 사업을 하는 업체에서 새로 오픈한 체험형 키즈카페였다.
두 명의 면접관이 있었고, 나는 프린트해 간 이력서를 각각의 면접관에게 건네주었다. 앞선 면접자들이 이력서를 한 통만 들고 와 불편했다며 두 면접관은 흡족해했다.
이력서를 살펴보던 남자 면접관이 이력서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이 프로그램을 다 하신 거예요?"라고 물었다.
네.
나는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 말했다. 내가 은연중에 방송작가일을 한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팀장급으로 보이는 여자 면접관이 아주 흡족해하며 자기 회사와 잘 맞는 인재인 것 같다고 얘기하면서 단 한 가지 생각보다 너무 고 스펙이라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오잉? 고스펙이요?
난생처음 들어봤다. 스펙이 좋아서 고민이 된다니.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다. 뭐든 최선을 다하는 나이지 않던가.
방송작가, 우리들끼리는 3D업이라고 해요. 별별거 다 하거든요. 저 쉬운 여자예요. 막 다루셔도 됩니다~ 하하
나는 내가 얼마나 일이 하고 싶은지, 아무 일이나 막 시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는지 어필했다. 많이 쉬었고,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열심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새빨간 거짓말쟁이. 여기서 일 안 할 거면서.
그런데, 면접을 보다 보니 머리 쓰지 않고, 키즈카페에서 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 이런 전개가 펼쳐질 줄 몰랐다.
다음으론 호텔 관리직 면접이었다. 신생 회사였고, 면접관들이 20대 젊은이들로 보였다. 신세대 회사답게 복지도 훌륭했고, 요즘 말하는 ~님 호칭에 익숙한 회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나서, 질문이 더 있냐고 하길래 "젊은이들을 선호하는 곳이냐"라고 물어봤다. 그렇게 묻는 나 자신이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님을 증명하는 일이었겠지. 면접관들은 "딱히 그렇진 않다"라고 대답했고, 역시나 생각보다 고스펙이란 얘기를 했다.
뭐지? 나 좋은 대학 나온 여자도 아닌데? 고스펙이라는 말이, '우리랑 맞지 않아'의 둘러대는 말쯤 되는 걸까?
어쨌거나 두 번의 면접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면접 볼 회사에서 일할 맘은 전혀 없다면서도 면접에서 잘 보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은 굉장히 낯설기도 했다. 아마도 나의 면접 실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며칠 후, 처음 면접을 본 곳에서 연락이 왔다.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합격의 문자를 받고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일할곳이 집과 거리가 멀기도 했고, 월급도 생각보다 낮았다.
아, 월급과 관련해서는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나는 애초부터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 일을 하게 된다면 최소한 삼백 이상은 벌 수 있을 때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최저시급에 해당하는 월급이 반갑지 않았던 건 당연하다. 게다가 일할 생각이 없던 곳 아닌가.
그리하여 나는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딜을 걸었다.
새로운 곳에서 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지만, 월급이 좀 아쉽다. 내가 가서 키즈 카페 관리는 물론 교육 프로그램 홍보 등 많은 일을 담당할 수 있으니, 월급을 맞춰 주실순 없느냐. 나를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달라.
나를 탐내어 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담당자는 팀장과 상의 후 다시 연락을 주겠노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하, 정말 어이가 없겠지. 어이가.
수업을 들으러 가보니, 면접을 본 사람 중에 몇 명의 합격자가 있었고, 다들 취업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을 듣고 있는 '관상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자리기도 했고, 낮은 임금 때문에 고민이 되는 듯했다. 일자리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호의적인 반응이었고.
그래서, 콧대 높은 나의 딜은 어찌 되었냐고?
최대 얼마까지 맞추어 줄 수 있지만 삼백은 어렵다는 답변이 왔다. 또 한 번 고민의 시간이 있었고, 나는 최종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키즈카페 특성상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데, 나의 주말과, 오가는 시간까지 하루 열 시간을 희생하고 받기에는 월급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합격을 하고도 나는 일하러 가지 않기로 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까? 문득 그 하나의 생각이 떠올라 잠시 망설여지긴 했지만. 다음에 또 면접의 기회가 있겠지... 있겠지?
그런데, 일하고 싶지도 않은 곳에 면접을 보면서 나는 왜 떨고, 최선을 다하고, 그들의 마음에 들려고 했던 걸까? 좀 어이없고, 생각할수록 웃겼다.
면접 볼 때의 그 약간의 긴장과 떨림을 잘 기억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가열하게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면접의 달인이 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