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대학교 홍보실에 면접을 봤습니다.
아침 일찍 커피를 내려 책상에 앉았다. 유난히 서재 방이 어둡게 느껴졌다.
남편이 중고로 얻어다 놓은 모니터 두 대에게 책상을 양보하고 나니, 내 노트북의 자리는 아들이 초등학생 때 쓰던 미니 책상이다. 겨우 노트북 하나 놓을 수 있는 크기의 책상 위에 노트북과 작가수첩을 아슬하게 올려놓았다.
아침대신 커피를 마시며 구인란을 뒤적이고 있을 때, 대학교 홍보실 공고를 보았다. 대학교 홍보실 공고는 작가협회에서도 간간히 보던 것이었다. 아마도 작가의 많고 많은 업무 중에서 홍보실에서 하는 업무도 상당량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가끔 경력직 공고들을 보면 솔깃하곤 했었다.
이번에 눈에 뜨인 공고는 집 근처 대학이었다. 아마도 자차로는 20분 내외, 대중교통으로는 한 시간 훌쩍 넘어갈 테지만. 어쨌거나 같은 지역에 있는 직장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유명한 대학이 아니라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기도 하고.
대학교 자체 직원 구인 공고란에서 링크를 타고 들어가 해당 페이지에 이력과 지원자의 정보를 입력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페이지가 불안정한 지 몇 번이나 오류가 나는 것이었다. 노트북의 문제인가 싶어 몇 번을 껐다가 켰다가 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학교 측 홈페이지의 문제인 것 같았다.
실컷 작성해 놓으면 올려지지가 않고 다시 저장했다 시작하려면 초기화가 되고, 지원중이라고 나오거나 하여 작성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시불시불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해야 한다. 한 번만 더 해 보자.
나는 참을 인을 새기며 끝까지 구직신청을 해 보았다. 정말 애쓴다 싶었다.
확 그만 포기했어야 하는데.
구직신청서를 접수하고, 하루 이틀쯤 지났을 때 문자와 이메일로 학교 측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아무 때고 괜찮아요. 하기엔 너무 능력 없어 보이고,
며칠은 안되고 며칠 몇 시에 좋아요 하기엔 콧대 높아 보이고,
그래서 ‘최대한 맞춰 보겠습니다만, 수, 목요일이면 더 좋겠어요.’라고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최종 수요일 면접으로 결정이 되었다.
막상 면접을 가기로 하고 보니, 의상이 마땅치 않았다.
없는 돈에 면접 의상을 사려니,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돈을 쓰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고, 가지고 있는 옷들은 죄다 티셔츠뿐이어서 아무리 골라 봐도 입을 게 없었다.
더구나 더운 여름이었다. 여름정장이나 셔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옷장에 있을 리가 없다.
면접을 본다는 얘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일단 합격이 되기 전까진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싶어 남편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 내내 핸드폰으로 입을만한 ‘저렴한’ 셔츠나 재킷을 검색하고, 정장 바지를 검색했다. 그런데 돈도 돈이지만, 살찐 몸뚱이가 문제였다. 당최 내 사이즈를 알아야 말이지.
그래서 이 결정장애는 무슨 배짱인지 결국 면접 전날까지도 면접복장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다 일전에 나에게 액세서리를 선물해 주었던 친구와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내일 면접이 한 군데 있다고 하니 눈이 반짝반짝거렸다. 친구는 밤에 남편과 아이들이 운동 나가고 집이 빈다며 나에게 잠깐 건너오라고 했다. 친구는 여름 재킷과 정장 바지, 안에 입을 나시까지 친구의 옷장을 털어 정장 복장을 세팅해 놓고 있었다.
이거 어때?
친구가 준비해 놓은 의상은 하필 요즘 유행하는 크롭 정장이었다. 나는 뱃살이 한가득 부풀어 오른 아줌마. 크롭을 보자 손사래가 절로 쳐졌다.
보기랑 달라, 한번 입어봐.
나와 어울릴법한 옷을 맞춰 골랐을 친구의 성의가 고마워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한번 입어 보기로 했다. 바지가 살짝 작아서 심호흡 한번 하고~ 잠그긴 했지만, 다행히 옷은 잘 맞았다. 크롭 재킷도 어깨뽕이 조금 과한 측면은 있었지만,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고, 생각보다 뚱뚱한 배가 부각되지 않았다. 아마도 상아색의 크롭재킷으로 시선이 가고, 검정 투턱 슬랙스가 뚱뚱한 하체를 커버해 주었던 모양이다.
썩 맘에 들었다. 친구는 거기에 어울리는 액세서리까지 꺼내 놓았다!
그리하여 이렇게 특별한 일일 코디 덕분에, 나의 면접 복장은 결정이 되었다.
그날 밤, 나는 늦게까지 면접을 보기로 한 대학교의 sns를 찾아보고, 학교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며 공부했다. 어떤 것을 물어보더라도 대답할 수 있도록 나름의 준비를 한 것이다.
몇 명이 면접을 볼지 몰라,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몇 부 인쇄해 파일에 넣어 두었다. 취업을 위한 면접은 처음이라 살짝 긴장이 되었다.
아~ 푸석한 피부로 가기 싫었는데, 이것저것 서치하고 생각하다 보니 잠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다음날, 찌푸등한 몸으로 일어나 찬물에 샤워를 했다. 여름인데도 찬물 샤워를 하는 법이 없던 나였다. 시원한 물줄기에 펄떡펄떡 뛰며 호들갑스럽게 샤워를 마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랜만에 화장대 앞에서 정성스럽게 화장을 했다. 진하게도 연하게도 말고, 꾸안꾸를 목표로.
일일 코디가 준비해 준 의상을 차려입고, 액세서리까지 완벽하게 착용했다. 향수를 한 방울 뿌릴까 하다가 오버인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이력서와 경력 기술서를 넣어갈 가방이 또 마땅치 않아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이가 쓰던 서류통을 발견해 거기에 넣었다. 뭐 이렇게 손에 들고 준비된 자세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된 가방하나 없다니 씁쓸했다.
서둘러 집을 나오는데 어디서 빵! 경적이 울렸다.
야~타!
친구에게 이야길 전해 들은 동네 언니와 뒷집 동생이 자가용을 끌고 집 앞에 대기 중이었던 것이다.
거기 버스 갈아타고 한참 가야 해~ 잔말 말고 타~ 오늘은 내가 모신다~
부끄러웠다. 이렇게 요란하게 면접을 보러 가고 싶지 않았는데, 나보다 주변에서 더 호들갑이다. 일일 매니저를 자원한 동네 언니와 동생 그리고 일일 코디가 정해준 면접 복장을 입고 면접장소로 향하는 길. 일일 매니저들의 수다 덕분인지 긴장은 어느새 풀리고 완전히 내 컨디션을 찾게 되었다.
평소 네 말발이면, 면접은 그냥 통과지 뭐,
잘하고 와 언니~ 기다리고 있을게~ 덕분에 오랜만에 젊은 피 구경하고 좋다~
일일 매니저들은 창문을 한껏 열고 파이팅을 크게 외치며 나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그 너스레에 긴장은 정말 달아났다.
나는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고, 화장실로 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화장도 한번 수정하고. 준비는 끝났다. 나는 약속시각 5분 전, 담당자에게 도착했음을 알리는 문자를 보내고 약속 장소로 갔다.
면접 인원은 예상과 달리 단출했다. 내게 연락을 했던 홍보팀장이 단독 면접을 보는 듯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내 얘기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질문은 던지고 답변을 듣지는 않는 것 같은, 이건 왠지 대충 시간을 때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담당자는 모든 면접자의 면접이 끝난 후 최종 선정된 사람은 따로 연락이 갈 거라고 말해주었다. 면접은 십 여분 만에 끝났다.
면접장을 나오는데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던 일일 매니저들이 내 얼굴을 쓰윽 훑더니 말했다.
왜? 별로야?
어, 뭔가 좀 건성으로 보는 느낌이야.
그래? 이 사람들이 귀한 시간 내서 왔는데 그럼 안되지~
사람들이 아니고 한 명이 면접 보더라.
그래?
일일 매니저들은 잠시 침묵하더니, 갑가기 목소리를 높여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들식의 심심한 위로였으리라.
우리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창문을 내렸다. 마치 드라이브를 나온 사람들처럼 노래를 따라 부르며 짧은 주행 시간을 즐겼다. 비록 공장들이 둘러싸인 도로를 지나가고 있었지만.
나중에야, 공공기관에서 면접을 볼 때는 면접자를 채용인원의 몇 배수를 의무적으로 봐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는 들러리였던 셈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밤을 꼬박 새우며 학교 정보를 모으고, 의상을 고민하고, 설레었다.
이럴 거면 거 왜 부르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