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보류, 쿠땡알바(1)

(20) 일용직 노동자가 되어 보았습니다.

by 돌콩
일이 어렵지는 않은데, 아마 언니는 못할 거야.
왜? 나 소실적에 알바 많이 했는데?
언니는 가성비를 많이 따지잖아. 셔틀버스 타는 시간까지 합하면 최저임금도 못 돼.


동네 모임에 가장 어린 동생 J가 최근 쿠팡 물류센터 알바를 하게 되었다. J는 그러니까 경력단절녀로 살다가 최근 사정이 있어 생계를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갑자기 일을 하려니 할 수 있는 게 없더란 J는 우연히 교차로 구인란을 보고 계란 공장에서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예쁜 달걀을 골라 담고 포장하는 일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진 않았지만, 한 번에도 여러 판의 달걀을 들어 날라야 하다 보니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가는 일이었다.


달걀판을 약간 사선으로 들어 안아야 하는데, 그냥 힘껏 들어 버린 거야. 몇 발자국 걷다가 달걀판이 휘리릭 쏠려 넘어진 거지. 사방으로 달걀이 철퍼덕 떨어져 난리가 났지모. 사모가 첨이라고 별 말 안 하고 치우라고 하더라고. 민망해서 혼났어.


어느 날, 저녁일을 마치고 온 J와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 J에게서 향수 냄새 대신 닭장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났다. 자신이 실수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J의 모습에 닭장 냄새가 더해져 짠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J에게 말하면 행여나 속상하진 않을까 모른 체 했다.


솔직히 경력이라고 할 것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데,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일을 하겠어. 이거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디야.


하루종일 서서 작업을 하다 보니 퇴근할 때가 되면 다리가 퉁퉁 붓는다고, 그래도 마흔의 나이에 바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J는 말했다. 일을 해야 하는 급한 사정이 있긴 했지만 나는 경력이고 뭐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당장 일을 시작한 동생이 참 대단하다 생각되었다. 그런데, 최저 임금밖에 벌지 못하니 두 아이를 키우기에는 빠듯했던 모양이다.

J는 어디선가 쿠땡 물류센터 일이 힘들긴 해도 어렵지 않다는 이야길 듣고, 달걀 공장에서도 일하는데 그거쯤이야 못하겠나 하는 심정으로 일용직 신청을 해 보았단다. J의 쿠땡 알바 기는 한동안 우리 모임의 주요 화두가 되었고, 이거쓴~ 우리 모임에 쿠땡 알바의 대 바람이 부는 시초가 되었다.


J를 따라 쿠땡 물류센터 알바를 시작한 건 Y언니였다.


어차피 토요일에 할 일도 없는데 뭐, 돈이나 벌어볼까. 그리고, 난 누가 시키는 일 하는 게 편해~


생활력 강한 두 사람은 그렇게 쿠땡 알바에 입성하게 되었다. 하필 급작스럽게 날이 더워져서 다녀오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절여지듯 하여 두 번은 못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다음날 바로 일당이 통장에 입금되면 힘든 어제를 잊고 다시 업무 신청서를 누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다음으로는 뒷집 동생 K가 합류했다. 사실 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혼자서는 일용직 일을 하는 게 엄두가 안 났다고. 그런데 의지할 두 사람이 있으니 갈 수 있을 것 같았단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 보니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있던 두 사람과는 달리, 경력단절이 오래된 K에게는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일 한 다음날 몸살이 나서 며칠을 방콕 해야 했다.


일은 단순해, 어렵지는 않은데, 거기 완전 헬이야 언니.


K는 물건을 찾아 바코드를 찍고 내려 보내는 출고 쪽 일을 맡았단다. 그런데, 현장에 에어컨을 틀지 않아서 한증막이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돌아온 K는 다시 일을 갈 거냔 나의 질문에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K 역시 다음날 통장에 입금된 아르바이트비를 보고 바로 다음일을 예약했다고 했다.

하, 무슨 입금내역문자가 만병통치약이나 고함량 종합비타민쯤은 되나 보다. 아르바이트비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오랜만에 자기가 일해서 돈을 벌었다는 그 보람이 전날의 몸살을 까맣게 망각시키는 것이었으리라.


하, 생각해 보니 이건 마치 출산의 그것과도 같아. 왜, 애 낳을 때 하도 진통이 심해서 두 번 다시는 내가 애를 낳나 봐라~ 하잖아. 그런데 그 쪼꼬미 미소 한방에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둘째를 가지고...


그리하여 J, Y 그리고 K는 매주 한 번 정도 알바를 나가게 되었다.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그들의 알바 에피소드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다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E가 이틀 연속으로 알바를 가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의 사업이 꽤 안정적이어서 알바에는 관심도 없던 E마저 쿠땡 알바를 신청하자, 이제 남은 것은 나뿐이었다. 가성비를 따지는 나로서는 J의 말대로,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오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쿠땡 알바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일을 해야겠다 생각한 이후, 생각만큼 경력단절여성의 취업문턱이 높다는 것을 깨달은 어느 날, 나는 쿠땡알바의 댓바람을 타고 알바 앱을 핸드폰에 깔게 되었다.


내가 일용직 일을 하게 되다니. 생각하니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났다. 일용직 일을 할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거니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말하자면 쿠땡 알바는 최후의 보류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 둘 쿠땡 알바에 합류할 때도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건데, 대세를 거르지는 못한 것이다.


다들 하는데, 나라고 고상한 일만 하란 법 있냐 싶은 마음이 자라나더니 뭐, 한 번은 경험해 봐도 좋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최저 시급의 일용직 일을 경험하고 나면 이것저것 따지던 나의 눈높이도 확 낮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고.


나는 E와 같은 날로 알바를 신청하고 픽이 되길 기다렸다. 쿠땡 알바는 전용 앱에서 일을 원하는 날짜와, 시간, 근무지를 선택한 후 일을 신청하고, 업체 측으로부터 전날 일이 확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으면 출근하는 시스템이었다. 직업소개소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오늘의 일이 할당되길 기다리는 일용직 노동자의 모습이 온라인으로 옮겨진 셈이다.


그런 일 나가지 말라고, 하루에 얼마 버냐고, 그 돈 자기가 어떻게든 벌어오겠노라고. 그런 경험해 볼 필요 없다고 차마 아내를 일용직으로 보낼 수 없었던 남편이 노발대발했지만, 나는 픽이 되면 무조건 출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금요일 낮 3시쯤, 다음날 토요일 낮 근무가 확정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막상 일을 하려니, 얼마 벌지도 못할 텐데 장시간 일해야 한다는 점이 못내 아쉽긴 했다. 그래도 함께 하는 친구가 있다는 점이 위안이 되었다. 마침 내가 신청한 토요일에 모두 알바 신청을 했고, 모두 픽이 되었다. 그리하여 독수리 5형제의 의리에 버금가는 5공주, 아니 오왕비는 한날 한시에 일용직 알바를 하게 되었다.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였으면 일용직 일을 할 지경에 이르렀다며 신세 한탄을 하거나 자칫 우울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왕비 덕분에 힘든 '노동'에 대한 생각보다는 우리들의 '추억' 한 페이지 즈음으로 생각되어 일하러 가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을 것 같았다.


거의 매주 불금을 즐기자며 커피숍에 모였던 우리들은, 내일의 알바를 위해 각자 집에서 조용히 쉬기로 했다. 나는 경험자들의 조언을 듣고, 준비물을 챙겨보았다.


사탕과 약과를 주머니에 꾹꾹 채워 넣었다.


자물쇠, 신발깔창, 쿨토시, 당충전할 사탕, 일회용 커피, 두꺼운 양말 그리고 아들이 입다 작아진, 쿨 소재의 바지와 티셔츠까지.

남편의 심드렁한 얼굴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녔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내 할 일을 하고 말리라.


다음날 오전 6시 45분, 집 근처 고등학교 앞에서 쿠땡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야 해서 나는 알람을 맞춰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랜만에 일을 한다 생각하니 살짝 설레기도 하고, 약해빠진 체력으로 몸살이 나진 않을지 걱정도 되었다. 푹 잘 자고 일어나 내일 파이팅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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