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또 밤을 기다립니다.

(22) 통장에 입금이 되는 소리가 비타민 같습니다.

by 돌콩

두 번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쿠땡 알바를 마치고 돌아와 씻자마자 침대에 널브러진 날, 생각했다.

다음날은 온몸이 욱신거려 일어나기 힘들었다. 흡사 좀비의 모습처럼 삐걱대며 겨우 집안을 오갔다.

빨래고, 설거지고 손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무슨 큰 일을 했다고 애 밥도 못 차릴 정도로 겔겔 대는 것인지 생각하니 좀 한심했다.


돈 들어왔숑~


점심시간이 지난 때였다. 좀처럼 울리지 않던 입금 알림이 왔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리던가. 핸드폰으로 오랜만에 입금확인을 하자 기분이 좋았다. 십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이었지만, 삐걱대던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기분 좋게 마트에 가 아들이 먹고 싶어 하던 멜론을 고민 없이 사들었다. 비싸서 망설여지던 과일을 몇 종류 통 크게 사고 나니 하루 일당의 절반이 사라졌다.


나는 뭣에 홀린 사람처럼 다시, 쿠땡 알바 앱을 열고 일이 가능한 날을 눌러 일용직 신청을 했다. 이번엔 야간 숏타임이다.


일전에 알바 신입 안전교육 때 만났던 한 커플이 정보를 전해주었다. 프레쉬센터가 새로 생겼고, 야간 숏타임이 있다고.

밤 9시부터 새벽 두 시 30분까지, 휴식시간 30분을 제외하고 다섯 시간만 근무하면 된다는 것도 맘에 들었다. 게다가 야간은 수당이 더 붙는다. 짧게 일하고, 최저시급보다 많이 받을 수 있으니 꽤 괜찮지 않은가?


그리하여 요번엔 쿠땡 알바 '숏타임' 바람을 타고, 오왕비는 같은 날 알바 신청을 했다.

우리는 밤 8시 셔틀을 타고 물류창고에 도착했다.


인접장 문을 열자 서늘한 냉기가 얼굴을 ‘때렸다.’ 예상치 못한 강렬한 바람에 흠칫 놀랐다. 처음 경험했던 쿠땡 센터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사람들이 이동하는 대로 따라가자, 환복 하는 장소가 나왔다. 거기에는 올인원으로 된 방한복이 사이즈별로 걸려 있었다.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 방한복도, 안전화도 비교적 깨끗했다. 그런데 우리가 늦게 도착한 탓인지, 방한복이 큰 사이즈 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나는 작은 체구에 XL를 입게 됐다. 그 모습이 105 사이즈 남편옷을 걸친 것 마냥 우스꽝스러웠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며 한바탕 깔깔 웃었다.


이때만 해도 좋았더랬지. 앞으로 벌어질 험난한 여정은 전혀 예상치 못한 채!


9시경, 우리는 일을 배정받는 곳으로 갔다. 백여 명은 족히 돼 보이는 사람들이 방한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더러 두꺼운 패딩을 입은 사람도 보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걸 그렇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옷을 갖추어 입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나는 이 센터의 신규 노동자였고, 신규 노동자는 다시 안전교육을 받은 다음 일이 배정된다. 실온, 냉장, 냉동 창고가 있는데, 신규가 냉동으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고들 했고, 실온에서의 집품은 할 만하다고 해서 마음을 좀 놓고 있었다.

안전교육이 끝나고, 관리자가 신규 노동자를 불러내 일을 배정해 주었다. 냉장, 냉장, 냉장...

아싸 냉장으로 가나보다... 생각하고 있던 찰나 내 바로 앞에서 냉장 소리가 끊겼다. 오잉? 앞서있던 오왕비 친구들이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나는 왜 하필 오왕비 젤 끝에 서 있었던가.


냉동~
네? 냉동이요?


당황스러웠다. 이럴 수가! 얼떨떨해하며 냉동 창고로 갈 사람 대열에 줄을 서고 보니, 방한복 안에 입은 것은 반팔이요. 하필이면 모자도 떨어져 나간 방한복을 골라 입었더라.


저, 모자가 없는데, 냉동 괜찮을까요?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관리자에게 말했다.


저기 보세요.


관리자는 ‘너 같은 인간 여럿 봤다’의 표정으로 무심하게 턱을 들어 종이 상자 하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군밤장수 모자가 두 어깨 들어 있었다.

모자를 들어 쓰려고 보니, 퀴퀴한 냄새가 났다. 찝찝했다. 그래도 일단 하나 집어 들었다.


냉동 창고는 영하 20도 정도 되었다. 안전을 위해 45분 간 창고에서 일한 다음 15분간 휴식하는 시스템이었다. 알아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원래는 지급된다던 핫팩도 똑 떨어져 지급되지 않았다. 뭐 이래?

손에 목장갑 하나 끼고 냉동창고로 들어간 나는 살기 위해 그 냄새나는 모자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마스크라도 한 장 걸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코로나 시즌이 지났다고 너무 방심했다. 한 겨울 눈밭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강추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얼얼했다. 이러다 피부가 터져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비벼대며 연신 콧물을 훌쩍였다. 안경에는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고, 손 끝은 춥다 춥다 못해 아프기 시작했다.

여기서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아니, 너무 열악한 근무환경 아닌가? 온갖 불평의 말들이 쏟아졌지만, 추위가 지속이 되자 그런 생각들도 사라지고 오로지 어떻게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까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겨우겨우 집품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순간 냉동 창고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45분 일을 한 후 알아서 15분을 휴식하라던 관리자의 말이 떠올랐다.


와, 이러다 냉동창고에서 쓰러져도 아무도 모르겠다.


나는 투덜대며 따뜻한 남쪽나라... 가 아닌 창고 밖으로 나왔다.

일하던 노동자들이 팔레트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쉬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얼어 허연 안경을 끼고 벌벌 떨며 나오는 내 모습은 꽤나 안돼 보였던 모양이다. 남자 한 분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핫 팩을 하나 건네주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지만, 염치 불고하고 살기 위해 나는 그 핫팩을 두 손으로 받았다. 주신 분 복 받으소서!


핫 팩으로 언 얼굴을 비비며 녹였다. 손과 발 말초신경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이었다. 관리자가 있던 데스크로 가서 면 장갑을 하나 더 가져와 두 개를 꼈다. 손 움직임이 불편했지만, 하나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화장실 진짜 따뜻해~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솔깃하여 가고 싶지도 않은 화장실로 털레 털레 걸어갔다.

우와~ 이곳은 진정 천국인가~ 화장실 문을 열자 훈훈한 바람이 목을 타고 온몸을 감쌌다.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방한복을 벗어 내리고, 몸을 비벼댔다. 꽁꽁 얼어있던 몸을 녹이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눈물이 핑~돌았다. 아, 나 너무 짠한 거 아니야?

손을 씻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는 거다!


허, 정말 작은 거 하나에도 감사하게 되네.

이 따뜻한 물에 온몸을 퐁당 담그고 한숨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하나 둘 다시 냉동 창고로 들어가고 있었다. 관리자도 없는데, 알아서 시간들 잘 지키고 있었다.

어쨌거나 주어진 시간을 또 버텨야 했다. 나는 얻은 핫 팩 하나를 한 손으로 얼굴에 비비며 나머지 한 손으로 카트를 끌며 불쌍하게 바코드를 찍기 위해 움직였다.


아니, 냉동실에는 최소한 방한 마스크나 장갑을 착용했는지, 옷은 따뜻하게 입었는지 정도는 확인하고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 준비 없이 온 내 잘못인 건지, 준비 안 된 나를 이곳으로 보낸 관리자의 잘못인 건지, 야속한 생각만 들었다.

잠깐도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얼지 않기 위해 몸을 굴려야 했다. 그렇게 또 45분이 지나고 창고 밖으로 탈출했을 땐, 정말이지 그만하고 싶었다.

그래도, 절망 속에 희망이 찾아온다 했던가? 세 시간쯤 지났을 때, 정말 손끝 발끝이 아파서 더 이상 못할 것 같았을 때, 이대로 돈 못 받아도 좋으니까 그만 가 버릴까, 집으론 어떻게 가나? 생각할 때 즈음. 집품을 안내하던 PDA가 멈추었다.


하나 둘, 밖으로 나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아직은 일이 많지 않아서 이 시간쯤 되면 일이 없어요. 계속 PDA를 작동시켜 보다가 일이 잡히면 들어가서 또 하면 돼요.


냉동에서 오래 일하셨다는 남자 한 분이 알려 주었다.

너무 추웠던 나머지 나는 연신 콧물을 훌쩍이며 아무나 보고 하소연을 하였다.


정말 추워도 너무 춥네요.

어쩌다 보니 내 옆에 앉아 있는 남자분도 몰꼴이 나와 흡싸했다. 그도 반팔을 입고 왔으며 마스크 한 장 걸치지 않은 채로 냉동창고에 끌려왔노라고. 우리는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동지를 만난 것처럼 서로를 짠하게 여기며 추운데 고생 많았다고 토닥였다.


그렇게 짧고 굵게 냉동실에서의 일이 끝났다. 그러고? 탈의실로 가는 길을 잃어버려 삼십 분을 헤맸다. 오메 오메~ 미로와도 같은 그 길을 찾아 헤매는 동안 사람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냉동실에서도 참았던 눈물이 막 터지려고 하던 찰나! 함께 일하러 왔다가 흩어졌던 오공주중 한 명을 만났다.

언니가 안 와서 찾으러 다녔어! 냉동에 갔던 사람들에게 혹시 쓰러진 사람 없었냐고까지 물어봤잖아!


정말 너무 반가워 울뻔했다. 오왕비 최초로 냉동실에 ‘끌려간’ 나는 짠한 아이콘이 되어 모두의 위로를 받았다.

한 여름이었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욕실에 따뜻한 물을 틀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아... 따뜻했다.

아들이 안방에서 에어컨을 켜고 자느라 실외기가 윙윙 돌아갔지만, 나는 열대야인데도 아들방 침대에 누워 이불을 턱 밑까지 덮었다. 그래도 덥지 않았다. 뼛속까지 있던 한기가 슬슬 슬 흘러나와 이불속이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추웠던 밤이 지나고 다음날.

얼얼하던 내 볼때기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처음엔 동상을 입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쩜 동상이 아니라 화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추워서 핫팩을 계속 얼굴에 비벼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왕비들이 피부과에 가라고 난리였다. 하지만 전날 그렇게 개고생을 하고 피부과에 그 돈을 다 가져다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알로에 크림을 잔뜩 바르며 피부 진정을 위해 애썼다.


그날 저녁. 모처럼 알바를 한 기념으로 오왕비가 모여 맥주 한 잔 시원하게 하기로 했다. 나는 몸이 썩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념이라 술자리에 나갔다. 맥주 한 잔을 마셨는데,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속이 좀 울렁이는 것도 같았다.


허, 맥주 한 잔에 취하는 사람 여기 있었네.


나는 더 취하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와야겠다 생각했다. 일어나 화장실로 가면서 직원에게 화장실 비밀 번호를 물었다. 직원이 숫자 네 개를 알려주는데 또 한 번 머리가 핑~

나는 숫자를 잊어먹지 않으려고 곱씹었다. 그리고.


괜찮으세요?

누군가 흔들어 깨웠다.

오잉? 내가 왜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지? 창피해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비밀번호를 알려드리고 돌아섰는데 퍽! 소리가 나서 보니 쓰러져 계셨어요.

직원의 말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아구, 그랬어요. 하하하

나는 먹쩍게 웃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오왕비 자리로 갔다.


얘들아, 나 쓰러진 거 아무도 못 봤어?
엥? 쓰러졌어? 왜? 맥주 한 잔 먹고?
술 취했어? 멀쩡한데?


순간 오왕비가 떠들썩했다. 누구는 숙취 해소제를 사러 나가고, 누구는 내 몸을 살펴보느라, 또 누군가는 주변을 살펴본다고 분주했다.

정신은 멀쩡했다. 술도 취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냉동창고로 끌려가 추운데 고생해서 혈액순환이 안된 게 아닐까.
갑자기 고생해서 그런가 봐.

오왕비의 짠한 시선들이 나를 향했다. 모두들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모르니 먹어 둬.

누군가 사 온 숙취해소제를 마시고,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잠자리에 들기 전, 출장 가 있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쓰러졌다. 혹시 내일 내가 못 깨어나면 119에 얘기해 줘.

새벽에 문자를 본 남편이 기겁하고 전화가 와 또 한판 난리가 났다.

남편이 당분간 맥주금지, 쿠땡 금지를 선언했다. 그러지 않아도 안 간다 안가! 또 쓰러질까 무섭다고!


어떻게 쓰러졌던지, 이마에 혹이 나고, 입술은 터지고, 이빨은 얼얼했다.

맥주 한 잔에 쓰러져 입술이 터진 얘기와 준비 없이 냉동고로 차출되어 벌벌 떨었던 나의 이야기는 아직도 오왕비가 술을 마실 때마다 꺼내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정말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잘못 넘어져 머리라도 다쳤으면 어쩔 뻔했을까.


아.... 그런데 이 큰일 날 사람이.... 그럼에도 정신을 못 차렸다.

그날 밤 그렇게 불안하게 잠들면서... 이제 쿠땡과는 안녕을 해야겠다고 다짐했거늘. 하루가 지나 입금이 되는 순간, (게다가 공휴일이어서 1.5배의 수당이 :0) 나는 또 알바앱을 열었다. 입금 소리가 마치 고용량의 비타민을 잔뜩 먹은 것처럼 힘을 불끈 나게 만들더라.

그래도 겁은 나서, 이어지는 주말 말고 다음 주로 예약을 걸었다. 좀 쉬고 몸 회복한 다음 다시 알바를 가야겠다고.


그래서 나는 또 밤을 기다린다. 이번에 갈 때는 냉동실에 끌려가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 가겠다고. 오왕비도 나의 경험을 교훈 삼아 경량 패딩과 방한모자와 마스크, 핫팩을 필수로 챙겨간다.

그러니 쿠땡 프레쉬 알바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준비 단단히 해 가시길 조언한다. 아, 열악한 일용직의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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