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 면접을 앞두고, 아침부터 나는 분주했다. 집안을 말끔히 청소하고 설거지한 후, 널어두었던 빨래까지 곱게 접어 정리했다. 비장한 각오 까진 아니지만, 청소하는 내내,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가벼운 마음으로 가자 되뇌었다.
일전의 면접에서 면접관이 성의 없이 본다는 게 느껴졌고, 공공기관은 채용인원의 3 배수 이상을 면접을 보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후부터였을 것이다.
나와 맞을까? 일할 수 있을까?부터 시작되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사실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그저 나의 이 온갖 고민과 준비들이 실은 누군가를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순간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들러리가 아니길 바라야지 뭐...
나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 볼 회사를 검색하고, 대충의 위치를 파악해 두었다. 그런데, 너무 느긋했었나. 12시가 되도록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면접을 보러 가기로 한 회사 까지는 택시로 20분 남짓. 대중교통으로는 50분 여 걸리는 곳이었다. 날씨가 덥기도 하고, 조금은 일찍 도착해 커피숍에서 땀을 식히며 면접을 준비해야지 했는데, 집안일을 마무리하다 보니 씻어야 하는 시각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의상 몇 개를 생각해 두긴 했지만, 입어보고 최종 결정을 해야 했다. 후보 1은 검은색 통 넓은 슬랙스에 에메렐드색 숏재킷을 걸치는 것이다. 면접에는 모름지기 재킷이지~하고 꺼내놓고 보니, 지난번 면접 때 입어서 잘 안 됐는데... 하는 생각에 살짝 망설여지는 것이다. 후보 2는 검정 슬랙스에 반팔 화이트 셔츠. 옷감 재질 때문인지 살짝 태극기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 어울릴 것 같은 복장이다. 후보 3은 검정 슬랙스에 반팔 검정 셔츠. 무난하긴 하지만, 더운 날씨에 칙칙해 보이진 않을까 싶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화이트 셔츠를 입기로 결정했다. 날씨가 더우니 재킷은 입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면접 보러 가기로 한 곳이 사회적 기업이었기 때문에, 왠지 격식을 그리 따질 것 같진 않았다. 시원한 게 최고지 뭐.
나는 대신 머리를 조금 더 시원해 보이도록 (응? 젊어 보이도록) 올림머리 대신, 포니테일 스타일로 한가닥으로 묶기로 했다. 조금은 더 명랑해 보이기도 하고, 내 나이보다 살짝 젊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헤어스타일을 결정하고 나니 이번엔 액세서리 결정이 남았다. 아무 무늬도 없는 흰색 반팔셔츠가 심심해 보이지 않도록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화려한 장신구는 자칫 성실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줄 것 같아서 귀걸이 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고심이 되었다.
무난하게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를 해보았다.
너무, 마님 스타일인가? 고상한 척하는 걸로 보이면 어쩌지? 뭔가 역동적으로 보였으면 좋겠는데...
그다음엔 흰색 셔츠와 어울리는 하얀색 꽃모양의 귀걸이를 해 보았다.
오우. 이건 너무 화려한데?
고민 끝에 나는 색깔이 있는 진주귀걸이를 하기로 했다. 세트로 목걸이는 하지 않고, 평소 착용하던 십자가 은목걸이를 착용하기로 했는데, 이게 또 고민인 거다.
면접 보러 가는데, 종교적인 색채를 보이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에이 액세서리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자.
귀걸이, 목걸이를 결정하고, 팔찌나 반지 같은 액세서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손목시계를 착용하기로 했다. 나는 이 손목시계가 신뢰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에요~라고 광고하는 거지.
여하튼 액세서리까지 고르고 옷을 스팀다리미로 다리고 줄줄 흐르는 땀을 후다닥 샤워로 흘려보냈다. 에어컨을 강으로 틀고, 선풍기까지 돌린 다음 드라이기를 최강으로 맞추어 머리를 말렸다.
어려저라~~
나는 평소에 잘하지 않는 묶음 머리를 하며 젊어 보이려고 나름의 발악을 하고 있는 내가 웃겨 피식 웃었다. 아주 피식피식 웃을 일이 넘쳐나는 어이없는 요즘이다.
긴장하지 않고, 여유롭게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시간은 훌쩍 지나 대중교통을 타고서는 이동하기 애매한 시각이 되었다. 아직 가방도 챙겨야 하고, 화장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잠깐 고민하다가 나는 대중교통을 포기하고 화장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면접인데, 기본 화장은 하고 가야지.
열심히 턱살을 깎고 과하지 않게 눈화장을 했다. 오랜만에 틴트도 바르고.
가방은, 그래도 수첩 하나는 넣고 다니는 모습이었으면 해서, 다이어리가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결정했다.
전신거울 앞에서 출격준비를 마친 내 외모를 점검해 보았다. 오랜만에 묶은 머리가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더 이상의 시간 지체는 힘들다. 나는 삐죽삐죽 솟아난 잔머리들을 샤워코롱을 뿌려 진정시킨 다음, 출발의 의미로 심호흡을 한번 크게 했다.
파이팅!
현관문을 열며 나는 오늘의 나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택시를 타고, 면접 볼 회사가 있는 장소 근처로 와서 내렸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초행길이라 잠깐 헤매다가 회사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면접 시간까지 30분 정도가 남아서 맞은편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무인카페였고,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땀을 식혔다. 화장을 한번 수정하고, 음료수를 마시며 잠깐 한숨을 돌렸다. 갑자기 면접을 본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리는 것 같길래, 웹툰을 열어 보았다. 무언가에 몰입을 하는 게 진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이다.
이미 몇 번의 면접을 해 보았지만 경험이 쌓여도 면접은 언제나 떨린단 말이지. 점심을 먹지 않은 관계로 커피보다는 에이드 종류가 나을 것 같아 청포도 에이드를 시켰는데, 달디달았다.
역시, 긴장될 때나 피곤할 때는 단 게 최고지.
음료수를 마시며, 웹툰을 보며 나는 살짝 떨리는 그 마음마저 진정시켜 보았다. 그리고 약속시간 10분경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회사 건물에 도착하여 미리 화장실을 다녀오니 약속시간 5분 전.
도착했습니다. 올라가겠습니다.
문자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번엔 그냥 올라가기로 했다.
4층 문이 열리고, 회사 사무실을 찾아보았다. 스타트업 8년 차의 작은 기업이었기 때문에 회사 공간이 크진 않았다.
똑똑.
나는 심호흡을 한번 더 하고 문을 두드렸다. 회사 밖으로 여자 직원분이 문을 열고 나오셨고, 곧바로 보이는 회의실에서 남자분이 나와 인사를 하셨다.
커피나 물 드릴까요?
네, 물 한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절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서 나는 무난하게 물을 선택했다.
맞은편에 면접관이 앉았고 우린 마주 보며 이야길 나누었다.
이제 막 커져가고 있는 회사이고, 회사의 홍보를 위해 인터넷 신문사를 창립하였으며 앞으로 미디어팀과 홍보팀을 구성하게 될 것 같다고. 그 시작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딱 적합하여서 불렀다고 했다.
면접관은 차분하였으며 때론 진지했다.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면서의 어려움이나, 앞으로의 비전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조금씩 어째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선 안 되겠구나. 그래도 함께 키워간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시작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임금 얘길 해 볼까요?
서로에 대한 탐색전이 오가고, 끝에 면접관이 페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었다.
나는 공고에서 제시한 월급보다 더 나은 대우를 요구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몇 십만 원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내게는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자기 효능감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면접관은 회사의 월급 기준이 낮은 편이지만 생각보다 고 스펙의 지원자라 담당부서와 다시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며 임금과 관련하여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다.
오잉? 가능성이 있던 거였네?
난 솔직하게 말 꺼내기를 잘했다 싶었다. 사실, 대부분의 경력단절인 사람들이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이전보다 못한 대우 속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왜 경력이 있는데 단절 됐었다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해야 하는지, 왜 그런 사회 구조가 되었는지 거품을 물며 토로하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이 회사, 은근 개념 있네~ 싶었다. 그런 부분에서 일단 합격!
면접 시간은 한 시간여 진행됐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시청 일자리센터에 들러 담당 주무관을 만났다. 일자리를 알선해 주신 주무관께 시원한 음료수를 사다 드리고 고민을 상담했다.
앞으로 일하게 될 회사를 같이 키워가야 한다는 부분에서 무게감을 느꼈고, 가볍게 일 년만 경력을 채워서 다른 곳으로 옮기자거나 그런 마음으론 안될 거 같아서였다. 나는 주무관에게 면접 소감을 전하면서 회사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연락이 오면 취업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전했다.
주무관은 내 일처럼 기뻐하며,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우선 경력단절을 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월급이 좀 적어도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해 주었다. 그 응원을 받으니 우선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팅은 끝났고, 이제 연락을 기다리면 된다. 하필 면접 본 날이 금요일이었고, 월요일에 연락을 주기로 해서 주말의 기다림이 길게 느껴질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경력을 살려 일해야 할까? 아니면 이제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까?
경력 단절을 어떤 방법으로 단절시켜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