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일하기로 했습니다.

(25) 10년 경력단절, 열 번의 이력서와 네 번의 면접

by 돌콩
드르륵.

진등으로 해 놓은 핸드폰에 메시지가 왔는지 울리는 소리가 났다.

면접을 본 회사였다.


논의 결과 결정된 월급을 제시하며 이 페이가 좋다면 채용의사가 있다는 간단명료한 문자였다. 삼백만 원에 택도 없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애당초 채용공고에서 제시한 금액보다는 조금 더 상향조정 됐다. 어떻게 한 번의 밀당이 더 필요한 순간일까? 고민했지만, 소심함이 발목을 잡았다.


어쩌지...


나는 시청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했다. 그래도 회사에서 신경을 써 준 거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거였다. 사실, 경력단절이 이렇게나 길면 이전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그런데도 회사에서 고려를 해 주었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그냥 일을 시작하라고.


그런가? 그저 감사해야 하는 일인가? 내가 생각했던 월급은 마흔 다섯 경단녀에겐 넘사벽이었던 걸까.


그건 그렇고 나는 과연, 글 쓰는 일을, 취재를 또 하고 싶은 걸까? 막내 때로 돌아간 것과 다름없이 일을 해야 할 텐데, 괜찮을까?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보니, 이건 뭐야, 2~3년 차 월급이랑 비슷하잖아? 자괴감이 들었다. 눈높이를 낮추고도 한참 낮추어야 한다는 게, 그 현실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나는 곧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까짓, 가서 나의 능력을 보여주면 되는 거야. 글 쓰는 일? 취재? 다시 하고 싶은지 어떤지 부딪혀 보면 되는 거지 뭐, 언제까지 고민만 하다가 끝날쏘냐!


그리하여 나는 입사하겠다고 답신을 보냈고, 일주일 후 새 달이 시작되는 날부터 일하기로 결정됐다.


일주일 후부터 일을 한 다니, 뭔가 준비해 놓을 거도, 준비할 것도 많을 것 같았다.


뭐부터 해야 하지?


나는 우선 아들을 앉혀놓고 당부했다. 이제 엄마가 출근을 하게 되었으며 아침에 너보다 먼저 출근을 하게 되었으니 밥을 먹고, 잘 치우고, 제시간에 씻고, 교복을 잘 챙겨 입고, 물통을 잘 챙기고, 머리나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다음 늦지 않게 등교하라고,

또, 6시에 엄마가 퇴근해 오면 너의 저녁 준비가 좀 늦을 것 같은데, 배고프게 있지 말고 엄마가 소분해 놓은 음식들을 데워서 먹으라고, 과일이나 후식까지 다 준비해 놓을 테니 챙겨 먹으라고.


그리하여 나는 가장 먼저 다 있는 상점으로 달려가 음식을 만들어 소분해 놓을 보관 용기부터 구입하였다. 아, 일을 시작해도 아들의 먹을 것부터 챙기게 되는 엄마의 삶이란.


나머지 며칠은 집안 정리를 하는데 보내었고 틈틈이 출근하면 무엇을 입고 가야 할지 챙겨보았다. 죄다 늘어난 티 쪼가리 밖에 없는 옷장에 셔츠 한 두 개가 채워지고, 슬랙스 몇 장도 로켓배송받았다.


출근 이틀 전에는 팩트를 하나 구입하였다. 하도 화장을 안 하고 살았더니 화장품도 백만 년 된 거였다. 혹여나 잘못사서 허옇게 뜬 얼굴로 출근하면 곤란하니까, 미리 팩트를 사서 발라 볼 요량이었다.

다행히 고심하며 고른 팩트는 피부톤에 잘 맞았고, 오랜만에 화장을 하니 한결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립스틱은 바르기 싫고, 립글로스의 끈적함도 싫지만, 생기 있는 입술은 갖고 싶어서 고민할 때 나처럼 평소 화장하길 즐기지 않는 동갑내기 친구가 색깔 나는 립밤 하나를 소개해 줘서 출근전날 극적으로 구입했다. 올리브땡이 문 닫기 직전에!



넉넉할 것 같았던 일주일간의 출근 준비가 끝났다.


그동안 급하게 운전 연수도 받았다. 아무래도 취재를 나가려면 운전은 필수일 것 같은데, 내 면허는 99년에 취득한 이후 장롱에 갇혀 있었다. 들어는 봤나~ 국보급 장롱면허. 그 장롱면허 탈출기는 다음에 들려드리기로 하고~

어쨌거나 짧은 기간 동안 우여곡절 끝에 운전 연수까지 마쳤으니 아주 빠듯하게 일주일을 보낸 셈이다. 취업을 축하하고 같이 놀 시간이 줄어드는 걸 아쉬워하는 동네 오왕비와 밤마다 파티 아닌 파티를 즐기느라 매일 밤늦게 집에 들어간 것은 차치하고.


드디어 십 년의 경력단절을 단절시킬 날이 왔다! 아직도 잘 선택한 일인지 헷갈리지만, 봉투는 열어봐야 안다고, 출근해 보고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므로! 또 한 번 못 먹어도 고!



첫 출근의 날. 나는 들뜨기보단 좀 진정 돼 있었다. 그리고 아주, 많이 어색했다.



회사에 도착하여 자리로 안내되었고, 같은 팀 기자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내 자리에는 이미 노트북과 태블릿, 사원증과 취재 수첩 등이 세팅 돼 있었다.

첫 출근을 환영받는 듯한 인상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우선 일주일간은 분위기를 살펴보느라 눈칫밥을 먹겠지만, 나는 아줌마다! 어디에서나 적응령 만렙인 대한민국 아줌마! 그러니, 십 년의 경력단절쯤 끄떡없다. 조금의 시간이 걸릴 뿐, 완벽 적응 할 것이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뉴스를 서치 하며 나는 이 자리에 앉기까지 몇 번의 이력서를 작성했던가 생각해 보았다. 열 손가락은 채워질 것 같았다. 면접이야 강제로 두 번, 내 의지대로 두 번이었지만.


열 번의 이력서와 네 번의 면접 끝에 십 년 경력단절이었던, 십 년 경력보유자, 나는 이렇게 취업에 성공했다. 결국은 쓸데없는 배움이란 없다. 무엇이든 배우고, 무엇이든 하다 보면 내 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집안에만 갇혀있지 말고, 활동을 하다 보면 기회가 찾아온다고.


앞으로 일을 해 나가며 또 여러 번의 생각과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잘 해내고 싶고, 나는 잘 해낼 것이다. 물론 글을 쓰는 일은 많은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고, 하여 이거 정말 아니었어! 다른 일을 찾고 싶을 수도 있겠지.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다. 일단 시작했으니, 십 년 만에 경력 단절을 단절시킨 것을 축하하며! 내일부터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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