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보류, 쿠땡알바(2)

(21) 일용직 환경, 이렇게 열악해도 되는 겁니까!

by 돌콩

혹여나 늦잠을 자지는 않을까, 한두 시간 간격으로 깨서 시계를 보느라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은 그런 밤이 지나고, 나는 6시에 정말 기상하였다.

찬물에 세수해 남은 잠을 쫓아내고, 쿨 소재의 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다. 살찐 몸에 날씬이 아들의 작은 옷이 올록볼록 내 몸의 엠보싱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별수 있나. 경험자들이 일하는 곳이 너무 더워서 쿨 소재의 옷을 입는 게 좋다고 하더라. 누구 아는 사람 없기만을 바래야지.

나는 머리를 질끈 묶고, 출정할 준비를 마친 다음 식탁에 앉았다. 하루종일 고된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아침밥을 꼭 챙겨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밥을 챙겨 먹게 되더라.


6시 45분에 늦지 않게 서둘러 집 밖으로 나왔다. 이 시각에 바깥에서 움직여 보는 게 참 오랜만이다 싶었다. 내가 잠들어 있던 시각에, 많은 사람들이 깨어 움직이는구나 생각하니 그간의 게으름이 한껏 부끄러웠다.


셔틀버스 정류장에는 이미 서 너 명의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쿠땡 알바를 가는 사람이 꽤 있구나 싶었다. 신규로 일을 나가는 나와 E가 오왕비 중 일등으로 줄을 섰고, 경력자들은 시간 딱 맞춰 느긋하게 도착했다. 곧이어 빨간색 대형버스가 도착했고 우린 차례차례 차에 올라탔다. 경력자들이 차 안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E와 나는 조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하자며 눈을 감고 있었다. 버스는 돌고 돌아 20여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오왕비 최초의 쿠땡 알바생 J가 말했다.


뛰어


나는 영문도 모르고 J의 뒤를 경보하듯 빠르게 따라 걸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일용직 사원들이 개미떼처럼 줄줄이 줄을 섰다. 출근 카드를 찍기 위해서인데, 얼른 줄 서지 못하면 출근 카드를 찍는데 몇 십 분이 소요된다고 했다.

우리는 경력자 덕분에 빠르게 줄을 섰고, 많이 기다리지 않고 출근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모든 데이터를 끄고, 오직 쿠땡 와이파이만을 켜야 한다. 출근 카드를 받기 전 기입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 좀 헤매었지만, 이 역시 경력자들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다.


J가 얼른 안전화 사이즈를 찾아 갈아 신은 다음, 무료 아이스크림을 하나 입에 물고 쉬라고 했다. 역시 경력은 무시할 수 없다 싶은 순간이었다. J덕분에 우리는 아이스크림이 동나기 전, 그러니까 꼭두새벽, 아니 이른 아침부터 공짜 아이스크림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무료 아이스크림도 늦게 가면 못 먹는단다.


대기하는 동안, 나는 안전화 신은 발을 사진 찍어 남편에게 문자 보냈다. 이제 일을 시작하면 전화기 사용이 금지되기 때문에 끝나는 시각까지 연락이 되지 않을 터였다.

야, 그거 남이 신던 거 아니야? 쿠땡 경험은 오늘만 하는 걸로 하자.
엄마 파이팅!


일용직은 나가지 말라며 끝까지 알바에 반대했던 남편의 문자에는 화가 잔뜩 담겨있었다. 그런 남편의 문자와, 아들의 파이팅 문자까지 받고 나니 살짝 기분이 꿀꿀하기도,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용직 일을 하러 온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

생각할수록 움츠려지고, 낯설어 나는 연신 두리번거렸다. 줄지어 서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 얼굴이 무표정이다. 하긴, 이 일이 신나고 즐거워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거라도 할 수밖에 없으니 오는 거겠지. 그런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있을 리 없다.


8시가 다가오자 경력자들은 어디론가 가 버리고, 신규인 E와 나는 대기하였다가 안내자에 따라 캐비닛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카키색 캐비닛이 벽면 가득 들어서 있고, 중앙에 접이식 의자 수십 개가 놓여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캐비닛에 각자의 신발과 물품을 보관하고 야무지게 자물쇠까지 채웠다. 오왕비 경력자들의 조언에 따라 바지 주머니에 당을 보충할 사탕과 약과를 불룩하게 넣은 다음, 안내에 따라 교육장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안전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무려 3시간의 비디오 시청 + 실습이 이어졌는데, 졸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E와 나는 출고 부분을 신청하였는데, 안전교육이 끝난 후 사원 한 명이 출고 신청자들을 데리러 왔다. 출고 신청자들을 일렬로 쭉 줄을 세운 사원은, 좌우를 살펴보더니 앞에서부터 4명씩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 내 바로 뒤에서 줄이 탁 끊겨 버린 것이다. 고로 내 뒤에 있던 E 와는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힝.


E는 6층 A동으로 나는 B동으로 가게 되었는데, 도착한 곳에 나를 포함한 4명의 신규자가 있었다. 우리는 출고 담당 사원에게 인계되었고, 담당 사원이 PDA 조작법 등 출고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고 했다. 그런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하필 마감 시각에 쫓긴 담당자가 혼자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바람에 신규 4명은 할 일 없이 한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웅웅 거리는 대형 선풍기가 천장에 한 두대 그리고 사원 테이블 앞쪽에 하나 보였다.

정말 이 더위에 에어컨도 없단 말이야? 숨이 턱 막히는 더위에 화들짝 놀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12시 점심시간이 되었고, 나는 일 한번 해 보지 않은 채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할 수 있었다. 오예!


우리 오왕비는 식당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하였다. 일이 없던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고, 이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K가 도착했다. 얼음물을 뽁뽁이에 야무지게 감싸 들고 온 K의 몸은 땀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어 하나 둘 모였는데 하나같이 달아오른 얼굴에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한 채였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올라온 운 좋은 내가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식당에서 밥을 배식받고 앉아 꾸역꾸역, 찐 밥을 입에 밀어 넣었다. 왠지 많이 먹어둬야 할 것 같아서 입에 맞는 반찬이 없는데도 김치 하나로 밥을 다 먹었다. 다들 맛이 없다면서도 먹어둬야 한다는 생각에 깔끔히 배식판을 비웠다. 그 후에는 경력자들을 따라 직원 휴게실로 갔다. 식당 외에 유일하게 에어컨이 빵빵히 나오는 곳이라고 했다.

휴게실은 캐비넛이 있던 바로 그곳이었다. 경력자 J 덕분에 알게 된 사실 하나 더. 휴게실 자판기의 음료수는 단 돈 300원. 아이스크림에 이어 복지라고 할 만한 게 바로 이 음료수라며 J가 시원하게 사이다를 플렉스 했다.


캬~ 맛 좋다. 얼른 먹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또 가자.


J의 리드에 따라 우리는 출입카드를 받았던 곳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미 아이스크림 냉장고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그나마 얼음물이 좀 남아 있어서 나는 얼음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짧은 한 시간의 식사시간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바쁘던 출고담당자는 점심을 먹고 난 후에도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직원도 이렇게 더운 공간에서 일하다니 너무하다 싶었다.


잠시 후 돌아온 직원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인사를 하고는, 우리에게 꼼꼼히 PDA사용법과 출고방법을 알려주었다. 오후 1시 30분이 넘어서야 나는 온전히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PDA에서 안내하는 번호를 찾아 닭장처럼 늘어선 진열대 틈으로 바구니가 담긴 카트를 한 몸처럼 끌고 이동을 한다. 먼저 바구니의 바코드를 찍고, 픽업해야 하는 물건이 놓인 진열대 번호를 찾아 바코드를 또 찍는다. 그런 다음 물건을 찾아 번호를 확인하고 물건의 바코드를 찍은 다음 바구니에 담는다. 그러고 나면 또 다른 물건이 있는 위치가 뜨게 되고, 이동을 한다. 물건을 찾아 바코드를 찍고 다음 물건을 찾아 이동하고. 단순한 일의 연속이었다.


일은 쉬웠지만, 더위가 관건이었다. 커다란 대형 선풍기 몇 대만이 놓여 있는 창고 안은 찜질방을 방불케 했다. 휴식시간도 없이 단순한 일을 반복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땀이 줄줄 흘렀다. 왜 J가 화장실이 가고 싶지 않아도 중간중간 다녀오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화장실을 가고 싶진 않았지만,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화장실 가는 시간 밖에 없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면서라도 조금씩 쉬면서 지혜롭게 일을 하라는 얘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화장실로 가 땀범벅이 된 바지를 내리고 올리는 것도 힘에 부쳤다.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니 물에 빠졌다 나온 생쥐꼴이 따로 없다. 누가 출고를 '마트에서 쇼핑하듯' 일하면 된다고 했던가! 얼굴에서는 불이 나 있고, 가뜩이나 없는 머리숱은 땀에 촥 달라붙어 가관이었다. 뭐 외모야 누구 볼 사람도 없고 상관없을 문제였지만, 아니 도대체 열악해도 너무 열악하다. 쿠땡 안 되겠네~


6시에 기상하여 새벽 6시 50분경 셔틀버스를 타고, 8시부터 오후 5시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30도가 넘는 더위에 오랜만에 일을 하고 보니 돌아오는 셔틀 안에서는 말 한마디도 하기 싫었다.


다시는 겪어 보고 싶지 않은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일용직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 곱씹어 보며, 당분간 쿠땡 주문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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