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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Mar 11. 2024

월요일 아침, 초콜릿!

마흔여섯_나를 위로하는 아침 메뉴, 다디단 초콜릿.

주말이 끝났다. 내일이면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열심히 잘 해내야지 하던 마음가짐은 작심 3개월 만에 끝났다. (작심 3일이 아닌 게 어디냐!) 


그도 그럴 것이 1월부터 약 두 달 동안 고놈의 사업계획서에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1년 농사를 계획하는 일뿐인데, 안 해본 일이라고 신경이 쓰였나 보다. 새로운 일을 해내는 동안 잘해오던 일은 갈 길을 잃었다. 길 뿐 아니라 의욕도 잃었다. 스마트한 직장에서 스마트하지 못한 나를 발견했을 때 오는 좌절감, 나 혼자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소외감,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어필해야 한다는 치사함. 그런데도 남아야 할 이유를 찾느라 매일이 피곤했다.      


게다가 하나 있던 팀원마저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하필이면 여러 가지 업무가 섞여 가장 바쁜 3월에 말이다. 아내가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됐단다. 다행히 초기라 수술하면 된다는데, 가족이 아프다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회사의 착한 리더들은 그의 재택을 허락했고, 회사 구성원들은 모두 나를 짠한 얼굴로 바라보며 한소리들 했다.


 혼자 어떡해?


그러게~ 혼자 어떻게 하지? 그걸 리더들이, 하나뿐인 팀원이 모르는 건 아닐 텐데~ 나한테 괜찮겠니? 상의 한마디 없이, 쟤 재택 시켜도 될까? 너 혼자 다 감당해야 할 텐데? 하는 양해 한마디 없이, ‘그가 재택 하게 됐다’라는 통보만 받게 되었다. 


아…. 부럽다. 그 재택 내가 하면 안 될까? 

아니다~ 가족이 아프다는 건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감정이지.     

 

무언가…. 어쩔 수 없는, 불합리함을 느끼고 나자, 더 일하기는 싫어졌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파이팅 넘치게 회사로 향하고 싶지만, 몸이 천근만근이고,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은 주기적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마음을 다잡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이런저런 회사의 뒤숭숭한 분위기도 그랬지만, 해나가야 할 일이 많은데,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과연 이 파도를 헤치고 나갈 역량이 되는 사람인지 의문이었다. 맞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내 의욕이 ‘성급함’으로 취급되는 일을 겪는 게 짜증이 났다. ‘협업’이라는 건 중요하고, 팀원과 의견을 맞춰 일하는 것도 개인의 ‘능력’으로 치부되는 이곳은 ‘회사’이지 않던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는 그 확실한 진리를 알면서도 나는 떠나지 못하고 있다. 왜?      


내가 자리를 비우면 팀원이 아무도 없는데 업무는 어떡하지?라는 걱정? 사실 나도 안다. 내가 떠나도 회사는 잘 굴러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겠지….  고정적인 수입? 그래, 갑자기 수입이 없어지면 아쉽긴 하겠다. 회사 가깝고, 6시 칼퇴근이 지켜진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큰 매리트가 있는 거라고 계속 나의 불만을 잠재우고, 나의 자존감을 토닥이고 억울하거나 섭섭했던 내 마음을 모른척하며 6개월을 ‘버텨’ 왔다. 하…. 이런 맘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다들 그런 맘으로 일하는 거야.
          

처음이다. 남편의 말 같지 않은 소리가 귀에 제대로 들어온 건.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가장으로 묵묵히 버텨온 그대가 참 대견해 보인 건.      


무거운 몸을 일으킨 월요일 아침.  입안이 꺼끌 거려 아침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끼니는 챙겨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냉장고 앞에 서서 문을 열고, 한참 냉장고 안을 스캔했다. 맛을 떠올려 보아도 도저히 당기는 음식이 없다. 문을 닫으려고 하던 찰나. 며칠 전 남편에게 뒤늦게 받은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오늘 아침은 너로 정했다!      


초콜릿이라니. 


나는 아침부터 초콜릿을 밥으로 먹는 게, 내 위에 대단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뭐라도 하나 더 곁들여보기로 했다. 단 거에 단 거 추가! 곶감이 더해졌다. 


생초콜릿 두 개를 조심 덜어 그릇에 옮기고 곶감과 나란히 담았다. 나는 냉수로 위를 적신 뒤, 생초콜릿 하나를 통째 입에 넣어 침으로 살살 녹였다. 생초콜릿의 씁쓸한 첫맛이 혀에 느껴짐과 동시에 달콤함이 입안 가득 진뜩하게 퍼졌다.      


인생은 이런 거라잖아. 씁쓸한 것 뒤에 달콤한 보상이 뒤따르는 거. 다들 그렇게 산다잖아. 


나는 감정 없는 사람처럼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초콜릿이 다 녹기도 전에 반찬 먹듯 곶감을 한입 베어 물었다.


지독히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의 시간도 흘러, 달달한 금요일 저녁이 곧 올 것이다. 그래도 이왕 일하는 거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고, 나를 찾지 못하고 살던 지난 십 년을 생각해 보라고. 얼마나 일하고 싶어 했냐고.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터벅터벅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월요일 아침, 기가 막힌 초콜릿 밥상 덕에 그래도 기운이 난다. 다디단 직장 생활은 나 하기 나름일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글루미 한 나의 마음에 최면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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