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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아빠

아버지, 폭싹 속았수다!!!

이제와 무슨 소용 있을까. 그 말이

by 돌콩
막판에 울지 마... 오애순이가 울면 난 그렇게 죽을 맛이데... 그럼 난 너울너울 못 가...

살이 쏙 빠진 관식이 잠자리에 누워 힘없이 말했다.


임종면회를 간 날, 울다 목이 메인 엄마에게 아빠가 말했다.

"울지 마소. 가는 사람 마음이 안 편하다 아이가... "


드라마 '폭삭속았수다' 때문에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어쩜 그렇게 관식은, 우리 아빠와 닮았을까.

차마 16화를 끝까지 다 보질 못하고, 눈물 콧물 쏟다가 늦은 밤, 어디에 소리치지 못하고 여기에 왔다.


내가 살려줄게, 걱정 말아.

암 진단을 받은 관식에게, 애순이 말했다.


지역 병원에서 3개월도 살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아빠와, 서울 큰 병원에 갔던 날.

'항암 하면 최대 1년, 못하면 최대 6개월' 그 얘길 전해 듣고.

하염없이 가라앉던 아빠의 얼굴을 보며 엄마도 말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줄 거니까 나만 믿으소!"


무쇠와 같던 관식은 24번의 항암에 녹아내렸고,

무쇠 같던 우리 아빠는 3번의 항암에 완전 녹아내렸다.


마지막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싶다며 돌아온, 드라마 속 관식을 보며,

"집에 가고 싶다"라고 언니에게 전화했다던 아빠의 마지막 항암 기간이 떠오르고,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속상함에 눈물이 났다.


시 쓰는 문학소녀 애순이 처럼, 우리 엄마도 글 쓰기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

가난한 환경에서 만난 애순과 관식처럼, 그럼에도 서로를 아껴주고 위하며 그 온갖 험난한 고생을 성실함으로 이겨 온 그들처럼. 꼭. 우리 부모님이 그랬다.


뱃일을 하다 손가락을 다쳐 한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는 관식처럼,

못질을 하는 아빠의 엄지손톱엔 늘 금방이라도 빠질 것처럼 검은 멍이 들어 있었고,


양배추 1통에 삼백 원, 세 통에 천오백 원 말을 못 해 책만 들여다보고 있던 애순이,

엄마가 되어 오징어 손질을 하고, 손님을 끌려고 호객행위를 하고, 뱃사람과 흥정을 다 할 만큼 강해진 것처럼 여리던 우리 엄마도 가난과 세월이 그렇게 악바리로 만들었다.


작은 방에 이불을 깔고 누운 관식 옆에서 애순이, 1년만 더 살았으면 하는 대목에서는

목구멍이 막히는 줄 알았다. 울음이 솟구쳐서.


딱 3년만 더, 아니 그게 욕심인가 하나님이 안 들어주실까. 아니 그럼 2년만. 아니 그것도 욕심인 것 같아 안 들어주실까. 그럼 딱 1년만 더. 아빠를 살게 해 달라고.

온 가족이 하나님께 애원했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도 숨을 쉬고 내뱉는 게 힘든 일이 된 아빠를 보면서도,

임종면회가 임종면회라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아빠 손 한번 더 잡아보지 못하고, 목소리 더 들려주지 못하고, 코로나 기간이라 마스크를 써야 해서 마지막 얼굴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그렇게 아빠를 외롭게 떠나보냈던 그 시간이.

내내 가슴에 돌덩이로 남았다.


아빠는, 그렇게 애써 눈물을 참으며 인사하는 우리를 보며, 너울너울 떠났을까.

마지막까지 엄마를 쫓아다니던 아빠의 눈을 떠올려보면, 그러지 못했을 것 같아서 그게 또 마음에 아린다.


이번에 아빠 집에 방문하게 되면, 엄마 더 잘 모실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야겠다. 엄마의 봄을 찾을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그리고, 임종 면회 때 말하지 못해서 내내 후회되는 말도.


"아빠, 덕분에 든든했고, 우리 잘 컸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정말, 잘 살았어요! "

"아빠, 폭싹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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