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넷_아줌마스러움에도 이유가 있다.
우리 집 두 남자는 가끔 자전거 라이딩을 즐긴다.
코로나 생활지원금이 지급되었을 때, 생활비로 사용하느냐, 무언가를 남기느냐를 두고 고민하다가 생각지 못한 돈이 생겼으니 평소 돈이 아쉬워 살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를 사기로 했고, 금액에 맞춰 적당한 자전거 두 대를 구입했다.
"너도 하나 사"
남편이 인심 쓰듯 말했지만, 니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니 돈인, 누가 써도 마이너스인 이 상황에서 내 자전거까지 살 순 없었고.
두 남자는 한동안 주말 아침이면 자전거를 타러 나갔는데_참고로 우리 집은 주말에도 늦잠 자는 사람이 없다_그럴 때 나는 홀로 런-데이를 한다.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의 공원을 두 남자가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동안 나는 양쪽 발바닥의 티눈 때문에 찌릿한 고통을 느끼면서 굵어진 무 다리에 알아 야무지케 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며 걷기를 시작한다. 공원에 다다를 무렵이면 이미 팔, 다리에 힘이 풀려 기운이 없다.
공원을 한 바퀴 뛰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구간은 '마의 구간'인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힘이 달려 다리가 후들거린다. 체력을 키우려다가 병을 얻지 싶은 생각이 앞서고 언제쯤 이 길이 끝이 나나 한숨을 내 쉴 때쯤이면 집에 돌아오는데, 그래 봤자 만 보가 채 안 되는 거리다.
두 남자는 공원 너머 자전거 모양으로 놓인 '자전거 다리'까지 라이딩하고 오는 모양인데, '거기 한 번도 안 가봤어?' 하는 남편의 말에 '원 펀치 쓰리 강냉이' 급의 주먹을 날릴 뻔 했다. 걸어서 거기까지 어떻게 가라고!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게 더 좋다고 말하며 걷기와 뛰기를 했지만, 공원에 가족들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는 모습이 솔직히 부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자전거까지 살 여유는 없었다. 두 개의 자전거만으로도 꽉 차는 전실도 문제였고.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회사 체육대회에서 부상으로 자전거 한 대를 타 왔다. 비싼 메이커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어가 18단이나 되는 새 자전거였다. 안타깝게도 땅꼬마인 내 다리가 문제였는데, 안장을 최대한 내려도 까치발로 겨우 땅에 닿았다. 그래서 새 자전거는 나 보다 훌쩍 커진 아들이 타기로 했고, 그간 아들이 타던_조금 낮아 보이는_자전거를 내가 타기로 했다. 드디어 세명이 함께 라이딩하는 날이 온 것이다.
일요일 아침, 아침잠이 없는 우리 가족은 7시 30분. 당근 사과 주스 즙을 먹은 후 라이딩 준비를 시작했다.
썬 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머리를 묶고, 햇볕을 가리는 넓은 창 모자를 챙겨 썼다. 사실 한 여름 운동복이 없어 봄가을에 입는 요가복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단벌 아줌마인 나는 이날도 간절기용 요가복을 입고 양말을 챙겨 신었다.
"더운데 양말은 왜 신어?"
"발목 보호해야지. 그리고 너 몰라? 나 애 낳고 여름만 되면 발이 시린 거. "
"엄마 모자는 왜 써? 헬멧 써야 하는데?"
"헬멧만 쓰면 얼굴이 타잖아~ 기미 생겨서 안돼."
"그 모자 쓰면 헬멧이 한 써질 텐데?"
나는 기겁하는 두 남자의 표정을 싹 무시하고 창 모자 위에 헬멧을 썼다. 안경을 창 모자가 누르고 창 모자를 헬멧이 누르다 보니 안경이 코 끝에 내려져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헬멧의 끈이 목을 조였다.
'헐... 아줌마가 따로 없네.'
두 남자는 창피해서 같이 못 다니겠다며 고갤 절래 절래 흔들었다. 아니, 아줌마 패션이면 어때서, 그래 나 아줌마다 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힐끗 거울을 보았더니 글쎄, 모습이 가관이긴 하다. 아가씨에게선 절대 볼 수 없는 패션. 하지만 난 용감한 아줌마다! 기미 올라오는 게 죽기보다 싫은 아줌마!
남편은 그간의 라이딩 실력을 뽑내기기라도 하듯 먼저 앞서 나갔다. 아들은 내 뒤를 따랐다. 그게, 처음은 새 자전거에 익숙지 못한 아들이 천천히 달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자전거를 못 탈까 봐 뒤에서 지켜보며 오는 중이었던 것이다. 하 너 지금 엄마 무시하냣! & 오호~ 아들 잘 키웠네 엄마 보호 해 줄줄도 알고~ 의 마음이 양립하는 가운데 열심히 페달을 굴렸다. 잠시 후엔 앞서가던 남편이 아들을 앞으로 보내고 내 뒤를 이었다.
"지금은 기어를 내려야! 더~ 더 내려봐~ 기어를 내리고 바퀴를 돌려야지 그래 그렇게! "
아주 잔소리 코치가 나셨다. 아니 나도 자전거 탈 수 있다고!
어쨌거나 두 남자의 _잔소리_호위를 받으며 공원에 들어섰다. 잠시 쉬기로 하고, 의자에 앉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들의 이마에 흐르고 있는 땀을 닦아 주려 했다. 그런데, 움찔 이 녀석이 피하는 거다.
"헐~ 그 손수건을 아직도 써?"
남편이 기겁하며 말했다. 아기 때 쓰던 곰돌이가 그려진 거즈 면 손수건이다. 그 손수건 아직도 써?라는 말에는 애기 손수건을 들고 다니냐, 다른 어른스러운 예쁜 손수건은 없냐? 의 질문 혹은 지지리 궁상이시네요 어머니.. 하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 나 아직 애기 손수건 들고 다닌다. 뭐 예쁜 손수건 한번 사 줘 봤냐! "
두 남자가 '아 진짜 아줌마...'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괜스레 몸을 움츠린다. 췟 내가 너희들 때문에 이러고 살지! 하면서도 자전거 위에 앉아 툭! 접힌 배를 보니 아줌마의 현실이 팍팍 느껴진다.
'아줌마스럽다. 내 패션도, 행동도. 그래 난 아줌마인걸 뭐. '
지나가는 아줌마 패션에, 지나가는 아줌마 행동에 나도 가끔 뜨악할 때가 있다. 아줌마가 꼭 저래야 하나?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그런 아줌마 패션에 익숙해진다. 아줌마가 되어 보니 알겠다. 그 패션과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도 예쁜 여름 운동복 입고 날씬한 몸에 크롭 티 입고 쿠션 좋은 러닝화 신고 운동하러 가고 싶다고!
'벅. 벅. '
한 여름에 간절기 요가복 입고 운동한 몸에 땀띠를 훈장으로 얻었다. 간지러워 오돌토돌 올라온 땀띠를 긁을 때마다, 그래서 쓰라릴 때마다 기분이 씁쓸하다.
왜 아줌마는 자기희생을 하고 있는 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가. 꼭 다들 나처럼 살진 않을 텐데. 아줌마스러움은 꼭 부정적이어야 하는가. 에 대해 곱씹어 본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