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에 몇 시간 있으면 진상일까?
마흔 넷_소심해져도 괜찮아.
초등 6학년인 아들이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발명교실 수업을 듣게 되면서, 아들을 기다리는 동안 근처 무인카페를 이용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커피 한 잔에 2700원, 무인카페 치고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한 시간 반쯤 앉아 있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사람도 몇 명 오지 않았고.
그런데 방학특강이 시작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틀 동안 열 시간, 그러니까 하루에 5시간을 연달아 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고로 5시간을 커피숍에 머물러야 한다는 얘긴데, 이리되고 보니 소심한 나는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과연 커피숍에 5시간을 앚아 있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커피숍에는 나 말곤 아무 사람도 없다. 간간히 와서 커피를 뽑아 가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자리는 텅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더라도 내 양심이 자꾸 한 잔 더 뽑으라고 재촉했다.
한두 시간이 지나면 최소한 음료를 한 잔은 더 뽑아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이 시작됐다.
사실 무인 커피숍 음료는 입맛에 맞지 않았다. 예의상 한 잔을 뽑아 들고 자리에 앉긴 하지만, 다 못 먹고 버릴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5시간을 음료 한 잔으로 버티자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초록창에 '커피숍에서 몇 시간 있어도 되나?'하고 검색해 봤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더러 있나 보다. 어떤 이가 '커피숍에 몇 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진상일까요?'하고 물었더니 댓글창에 불이 났다.
- 1시간 이상이면 진상이다.
-손님이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 다르다. 한 명도 없다면 몇 시간이라도 있어 주는 게 주인 입장에선 좋다.
-커피 한 잔에 최대 2시간이다.
한 대형 카페 직원은, 커피도 안 시키고 와서 낮잠을 자고 가는 진상도 있고, 음료를 시키지 않은 채 노트북을 하다가 영수증에 찍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고 싶어 옆 테이블에 슬쩍 물어보는 진상도 있다며 음료수를 한 잔이라도 시켰다면 당당하게 있으라고 얘기했다. 그래도 2~3시간이 지나면 한 잔을 더 시켜주는 센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여서. 그 아래에도 비싼 커피 시키고 왜 3시간 이상 못 있냐. 자리가 여유로운 경우 한 잔 시켰으면 시간 상관없이 있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각종 의견들이 이어졌다.
결론은? 없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내 맘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냐고? 아무도 없는 무인카페이지만, 핸드폰 충전기를 쓰고 있었고,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있어 여기가 남극인지 헷갈릴 만큼 시원하게 있는데 한 잔으로 5시간을 버티기엔 양심상 너무 찔려서 우선 따뜻한 '진한 카페라테'를 한 잔 시켜 천천히 마시다가 두 시간쯤 지나, 따뜻한 '녹차라테'를 한잔 더 시켰다. 그리고 카페 이용 4시간 반쯤이 지나자 밖으로 나와 아이가 교육하는 장소에서 땀 흘리며 기다렸다.
소심함이 가득한 나이 마흔넷, 뻔뻔함이 앞서지 않은 소심한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