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콩 Oct 24. 2022

콩국수가 좋아지는 이유?

마흔 넷_보라부인으로 살기로 했다.  

 매주 목요일 11시, 몇 년 전부터 나가고 있는 교회 구역 모임이 있는 시각이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니던 내가 이사를 온 후 마땅히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아들의 친구 엄마가 이 지역에서 제법 큰 교회라며 소개해 준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나는 대형 교회를 선호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소속감 없이 다녀도 된다는 점 때문이다. 교회 등록을 하지 않고 내 맘속의 어떤 불편함_주일을 지켜야 한다는_정도만 해소할 요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 시간,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반드시 해야 한다는 목사님의 강력한 말씀에 홀려

등록을 하고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후, 소위 말하는 '관리'가 들어온 것은 당연하고.

 다행히도 교회를 다니고 있던 아들의 친구 엄마와 같은 구역이 되었고, 이미 이 교회를 다니고 있던 아들 또래 엄마들 몇이 같은 구역 식구들이어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너무 싫고, 어색했다. 신앙이 깊지도 않았고, 성경 공부는 초등학생 때 달란트를 받고 싶어서 한 두 번 성경 퀴즈 대회에 나간 것이 전부였으며, 교제를 나눈다느니~누구를 섬긴다느니 하는, 모임에서 사용되는 신앙심 깊숙히 담긴 말투와 용어들도 적응되지 않았다.


 우리 구역의 대표 격인 구역장은 어려서 소아마비를 겪어 하반신이 불편한 분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모임이 있는 날이면 구역장의 휠체어를 끌어 줄 손이 필요했다. 처음엔 도맡아 끌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일을 하게 되면서, 집에서 놀고 있는 내가 주로 구역장의 휠체어를 끌게 되었다. 그 말인즉, 매번 구역 모임에 본의 아니게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매주 돌아가며 구역원의 집에서 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음료와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것에 조금씩 부담을 느끼게 되어 언제부턴가가 동네 큰 커피숍에서 구역 모임을 하게 되었다. 11시에 만나 차를 마시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점심시간이 찾아온다.

 늘 점심까지 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가에 대해 불만이 조금 있지만, 어찌 되었건 구역장의 휠체어를 책임지고 있는 몸이다 보니 티 내지 않고 모임이 끝날 때까지 있게 되었다.

 요즘은 커피값도 몇 천 원씩 하는 데다 점심을 먹을라치면 값이 비싸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비교적 저렴한 국수를 주로 먹게 되었는데_요즘엔 그 국수마저도 부담스러운 가격이 되었지만. _ 늘 고민 없이 멸치 국수를 시키던 한 사람이 살짝 고민을 하는 것이었다.


 "요즘 가끔 콩국수가 먹고 싶은데, 하나를 시키자니 다 못 먹을 것 같아서 고민이 돼"

 

 그러자 나보다 한 살이 많은 언니가 바로 이어 말했다.

 

 "나도 나도. 콩국수 먹고 싶었어. "

 "우리 하나 시켜서 나눠 먹어 볼까?"


 그러자 여기저기서 나도 요즘 안 먹던 콩국수가 당긴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결국 6명의 구역 식구들은 멸치 국수 3개, 콩국수 3개를 시켜 2인 1조로 멸치와 콩국수를 하나씩 시켜 나눠 먹기로 하였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 조차도 마흔이 되기 저엔 콩국수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콩밥, 콩국수 콩으로 만든 거라면 죄다 싫어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언젠가 아파트 장터를 지나는데 _우리 아파트는 매주 금요일 장이 들어선다_콩국물을 페트병에 담아 얼음물에 동동 띄어놓은 그것이 참으로 맛나 보이는 것이었다.

 어릴 때 콩 국물에 소금을 넣고 우뭇가사리를 채 썰어 넣은다음 얼음 동동 띄워 엄마가 여름 별미 간식으로 주실 때, 그게 그렇게 손사래 칠 만큼 싫더니, 내 돈을 주고 콩국물을 사는 날이 올 줄이야.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너 나 할 것 없이 콩국수나 콩국물이 먹고 싶어 졌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이 먹어서 그래"


 가장 연장자인 50대의 구역장님이 간단하게 그 신기한 현상을 정리하였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바뀐다.


 우리는 각자 나이가 늘어나면서 먹지 않다가 먹기 시작한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았다. 나부터 말하자면 쑥갓, 미나리 등 향이 있는 야채를 어릴 적에는 싫어했는데 성인이 되고 언젠가부터 이런 향이 있는 야채들이 좋아졌다. 어떤 사람은 안 먹던 콩자반이 그렇게 맛있더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이제야 고수의 맛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이 콩국수, 콩국물을 한 번씩 먹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증상(?)은 하나같이 마흔이 넘긴 후부터 시작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하더라.. 의 '나이' 기준이 마흔 살일까?

 39살이랑 40살은 숫자 하나 바뀌는 것뿐이지만 몸이 확실히 달라진다. 는 말도 주변에서 흔히 듣게 되는 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마흔부터는 늙어가는 것인가. 적어도 80세를 인생의 끝으로 생각한다면 마흔이 딱 중간 지점이긴 하지. 하지만 백 세 시대라는 요즘, 마흔은 적어도 이전의 이~삼십 대 정도 되는 나이 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도 왜 마흔부터 몸이며 입맛이며 변하는 게 많은 것일까.


 인터넷 초록창에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하는가?"하고 물어보았더니 이런 뉴스 기사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1만 개의 미뢰는 중년으로 갈수록 그 수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남아있는 미뢰도 크기와 감도가 감소해 미각을 인식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거꾸로 말해 입맛이 변하고 있다는 건 나이가 들고 있다는 반증일 터.




 얼마 전 나는 깜짝 놀랄 맛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가지다.

 가지를 얇게 어슷 썰어 기름 두른 팬에 구워서 간장에 툭 찍어 먹기만 했는데도 세상 쫄깃하고 그렇게나 고소할 수 없는 거다. 30대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던, 알기도 싫어했던 음식 중 하나였던 '가지'가 이렇게나 '가지가지' 놀라운 맛을 가지고 있었다니 이것은 실로 '발견'에 가까운 맛이었다.

 주말 농장에서 쑥쑥 자라는 가지가 처치 곤란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바빴는데, 가지의 매력적인 그 맛을 알고 난 후부터는 가지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김치냉장고 가득 가지를 채우고 있는 '보라 부인'이 되었다.


 내 나이 마흔 넷, 콩국수와 가지로 요리된 여름을 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