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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Jan 18. 2023

브런치의 필기체가 나를 살렸다.

마흔넷_ 브런치 덕분에 좋았던 2022년.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이 한 줄을 쓰고 나서 보름동안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연말부터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미루고 미루다 더 미루면 다시는 글을 쓰지 않을 것 같아서 억지로 책상에 앉았다.  


 매일이 똑같고, 지겹고, 우울했고, 살고 싶지 않았다. 아픈 아이를 키우느라 지옥 같았던 시간들도 지나고 보니 덤덤해지고, 이제는 아이가 내 손을 떠나 어느 정도의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나는 내 설 곳을 잃었다. 좀 허무한 기분도 들었다. 내 30대를, 내 온몸과 마음을 오롯이 한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게 하는데 보냈다. 의사가 일반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장담하던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내고 피아노 학원 외에는 사교육도 하지 않으며 오롯이 내 힘으로 아이를 키웠다. 그 아이가 이제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30대가, 나의 십 년이 왜 허무하게 느껴지는 걸까.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아 허무해.
왜 없어, 아들을 이렇게 잘 키웠잖아. 


 나의 이 공허함에 대해 사람들은 아일 잘 키웠으니 그걸로 된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그 위로가 내겐 위로가 되질 않았다. 그냥 나를, 내 일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_아들의 친구엄마로 시작해 지금은 가장 마음을 내주고 있는_ 두 명의 동네 언니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그중 한 명이 올해 글쓰기를 목표로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해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글쓰기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정작 글을 쓰겠다던 나는 한 자도 쓰지 못하고 있는데, 목표한 것을 이루는 그녀가 대단해 보이면서도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자존심도 살짝 상했다. 나도 더 늦기 전에 어떻게든 시작을 해야겠다 생각한 건 바로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갑자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보니 신춘문예가 코앞이었고, 브런치북 접수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둘 다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매일 출근하는 심정으로 책상에 앉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후다닥 집 정리를 하고, 세수를 하고 커피를 한잔 내려 책상에 앉았다. 뭐라도 쓰자며, 없는 머릴 짜내고 있자니 살짝 방송작가 하던 시절의 기분도 나고, 정신없이 글을 쓰고 지우며 받는 스트레스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이가 하교하면 간식을 차려주고,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저녁이 되면 얼른 저녁을 차려주고 또 서재로 콕 박혔다. 사춘기인 아들은 다행히도 엄마의 간섭 없는 그 시간들을 즐겼다. 그래서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는 죄책감에서 탈피하여 오롯이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었다. 서너 군데의 신문사에 글을 보냈고, 브런치에도 일주일에 한  두 번 꾸준히 글을 썼다.  

 마감에 쫓겨 신문사에 보낸 글들은, 보내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너무 수준 이하라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했지만, 브런치의 응원이 나를 다독여 주었다. 


 브런치에서 누군가 내 글을 구독할 때 보내오는 필기체 'b자'의 알림은 나를 구름 위로 붕~ 뜨게 해 주었다. 나는 마치 주식을 하는 사람처럼 핸드폰을 자주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내 글의 조회수가 1000을 넘고, 2000을 넘었다. 설렜고, 좋았다. 그러다 1만을 넘기 시작했을 때는 부담스러웠다. 글쓰기를 오래 쉬다가 이제 막 몸풀기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쓴 글을 1만의 사람이 보았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 모든 과정들이 나를 성장시켜 줄 것이다. 글이 성장하는 과정을 독자들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창피함은 내가 극복하면 되는 문제다. 

 핸드폰 상위에 브런치의 필기체 'b'자가 보일 때마다 내 얼굴은 첫사랑을 본 사춘기 소녀처럼 발갛게 달아오르곤 했다. 그 설렘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고 용기를 내어 글을 발행할 수 있었다. 무료했던, 내 자아를 찾지 못해 우울하던 마음에 두근거림을 선물해 준 브런치. 덕분에, 2022년의 문을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닫을 수 있었다. 땡큐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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