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시어머니의 문자가 도착했다. 마흔넷이나 먹은 아들이 생일밥도 못 얻어먹을까 봐 걱정하시는 걸까. 며느리가 아들 생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했을까 봐? 어쨌든. 나는 매년마다 남편의 생일상을 차리고, 사진을 찍어 시어머니께 보내드렸다.
먹을 사람이 셋 뿐인데 생일 상을 차린다고 재료를 사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어디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 게 훨씬 낫다. 그런데도 매 년 남편의 생일에 생일상을 차려 주게 되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시어머니의 부탁 때문에?
매년 남편의 생일상을 차렸다.
아니. 시어머니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결혼 14년 차인데 뭘 이제와 잘 보이고 말고 할 게 있나. 그렇다면 왜?
사실 난 결혼에 할 말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혼하자는 말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천 배쯤 더 많이 했을 거다. 물론 '이혼해'를 '사랑해'로 알아듣는 남편 때문에 늘 나의 결혼생활은 유지되고 있지만.
그렇다면 내가 밉다 밉다 하면서도 남편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건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의 마음 때문 아닐까? 안 그래도 애교라곤 없는 성격인데, 평소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이 크니, 말이 이쁘게 나갈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 나를 느무나 사랑한다는 남편에게, 옛다~하고 보상해 주려는? 애증의 마음 때문 아닐까?
생일상을 차리지 않을 때는 손수 생일 선물을 마련했다.
남편에게 생일 선물로 베란다에 미니 포차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까 남편 생일엔 꼭 나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단 말이다. 아니, 맨날 이혼하자면서, 미워 죽겠다면서, 왜???
1) 난 너한테 아내로서 할 도리 다 했다. 증명하려고? _큰소리치기엔 생일상만 한 게 없지.
2) 돈이 없어서 _ 외식 비용을 아끼려고. (소박하게 생일 상을 차려주다가 점점 스케일이 커지긴 했지.)
3) 내 맘이 뿌듯해서_남편 맘 기쁘게 하려는 게 아니고, 음식을 해서 한 상 차려놓으면 내 맘이 뿌듯하니까.
4) 요란한 파티가 필요해서_한 번쯤은 정신없이 음식을 준비하고, 풍성하게 차리고~ 배부르게 먹는 시간이 필요하더라. 그 기분 마치 우리 부자.
몇 번이 정답일까???
혼자서 준비하던 생일상을 아들이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함께 준비하게 되었다. 아들이 무쌈말이를 야무지게 만들어내는 동안 나는 나머지 음식을 휘리릭 만든다.풍선을 불고, 한 상 거하게 차려 우리만의파티를 준비를 한다. 그렇게 일 년에 한 번 남편의 생일상을 준비하는 게, 이젠 고정 행사가 돼 버렸다.
사실 우린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 직후부터 내내 힘들게 살았다. 각자의 스트레스와 우울함을 이겨내기 위해애쓰면서. 그래서 일 년에 하루쯤은, 행사를 준비하며들뜨는 마음이, 요리하느라 딴생각할 틈없이바쁜 시간이, 거하게 한 상 차려졌을 때의 뿌듯함과 가득 채워지는 마음이, 배 터지게 먹었을 때의 포만감과 여유로움이 필요했다.
바로그것이 매년 남편의 생일상을 차리는 가장 큰 이유일지 모르겠다.
남편의 생일 상은, 일 년간 고생하며 살아온 우리를 위로하는 상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도 이날만큼은 최후의 승자처럼 한상 가득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허세의 상이다.
따뜻하고, 배부르고, 충만했으니 내일도 잘 살아 보라고 토닥여주는 응원의 상이다.
올해는 시어머니의 문자에도 불구, 결혼 14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의 생일상을 차리지 못하게 되었다. 시립합창단인 아들이 그날 멀리 공연이 잡혔다. 아들의 매니저(?)인 나로서는 남편의 생일상을 뒤로하고 아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씀. 우리의 위로상, 허세상, 응원상인 남편의 생일상을 건너뛰려니 왠지 내가 다 서운한 생각이 들지만. 인생의 비, 바람 몰아쳐도 함께 한 14년 동안 꼬박 생일상을 차렸으니 한 번쯤은 생략해도 괜찮겠지. 위로와 허세와 응원이 없어도... 우리, 잘 살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