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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Dec 19. 2022

외롭지 않아 다행이야, 눈사람!

마흔넷_아들의 사회성에 관하여.

오~드디어 완성이다! 자, 사진 찍고 이제 들어가자~
안돼~ 원 모어 타임~


 눈이 펑펑 쏟아진 날, 하필이면 건조한 눈이 내려 눈 뭉치가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들은 낑낑거리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겨우 커다란 눈 덩이 하나를 만들어 냈다. 모자를 쓴 아들의 머리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감기 걸릴까 걱정이 돼 얼른 집으로 들어가자는 나에게 아들은 한사코 눈사람 한 명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우겼다.

 

 결국 우리는 아이고 허리야~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열심히 눈을 굴려 눈사람 짝꿍을 만들어 주었다.

 하나가 아닌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아들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외롭지 않겠다.

집으로 들어온 아들이 식탁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엄마, 난 모태 솔로지?
모태 솔로? 하, 초등학생이 무슨 모태 솔로 타령이야~
친구가 한 명도 없으니까 난 모태 솔로 맞지...


'모태 솔로냐'는 질문을, 사춘기가 막 시작된 아들의 푸념 정도로 받아들였던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마도 이성간 교제를 해 본 적이 없다는 '모태 솔로'의 뜻을 제대로 모르는 아들은, 늘 친구 없이 솔로인 자신을 모태 솔로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피부 희귀 질환으로 온몸에 흉터와 상처가 많은 아들은 어릴 적부터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상처를 보고 놀라는 아이, 놀리는 아이, 힐끔 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다양하게 받다 보니 자존감이 낮아져 그런 것인지 아들은 쉽게 친구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한 번은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데, 멀리서 앞서가는 친구에게 아는 체하기 위해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가던 아들이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돌아서는 것을 보고 속상해 숨어서 운 적도 있다.  아는 엄마와 연락해 거의 007 작전으로 친구와 약속을 만들어 주거나 친구와 나눌 이야깃거리들을 떠올려 주고, 놀이치료도 보내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회가 주어져도 아들은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이런 아들의 낮은 사회성은 아이를 키우는 내내 나의 숙제였다.


 친구 문제에 아이보다 내가 더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다 못한 어느 날 나는 나부터 달라지기로 했다.  '혼자도 괜찮아'라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되었고, 혼자서도 재밌게 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들과 이야기 나누게 되었다. 매 순간, 엄마가 함께 할 순 없다.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결국은 아이 자신이 변해야 하는 문제였다.


 아들은 매일 연습장에 무언가를 끄적이다 학교에서 돌아오곤 했다. 어떤 날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역 이름을 줄줄이 적어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노랫말을 적기도 하고, 그렇게 학교에서 쉬는 시간을 채우고 온 아들이 다 쓴 연습장을 새것으로 바꾸고 가면, 무언가로 빼곡히 적혀있는 아들의 연습장을 보며 코끝이 찡해지곤 했다. 아들의 외로운 시간들이 거기 연습장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


 그러던 아들은 고학년이 되고, 합창단 활동을 하게 되면서 조금 달라졌다. 공연을 한번 끝낼 때마다 자존감이 한 계단 올라가는 느낌이랄까. 아들은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학교에서 반 친구 몇 명과 어울려 보드게임을 하고 돌아왔다. 혼자라서 외롭다고 눈물을 찔끔거리던 아들이 학교 가는 게 즐겁다고 할 때, 그 말을 듣는 엄마의 마음은 이미 하늘을 날고 있다.

 자신이 모태 솔로라고 느낄 만큼, 마음을 나눈 친구가 없다는 점이 가슴 아프긴 하지만, 언젠가는 아들에게도 좋은 친구가 생길 거라고,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들을 응원하고 있다.


 눈사람이 외롭지 않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친구를 만들어 준, 아들의 따뜻한 마음이 예쁘고 짠해서 커플 눈사람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래 외롭지 않겠다.

  혼자가 아닌 눈사람 둘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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