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넷_겨울에 생각나는 음식
엄마, 이게 뭐야?
그거? 새알, 한 번도 못 먹어 봤어? 이거 진짜 맛있는 거야~
아들은 '새알'이라는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미역국을 빤히 바라만 보았다.
엄마는 가끔 나를 데리고 재래시장 보리밥집으로 가 점심을 먹곤 하셨다. 보리밥집은 어린 나에게는 재밌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노란 장판이 덧대여진 긴 식탁에 등받이 없는 긴 벤치모양의 의자가 양쪽으로 놓여 있었다. 노란 장판은 오랜 기간 밥집을 운영해 온 아주머니의 노하우가 담긴 것이었다. 보리밥집이 바쁘게 돌아갈 때 장판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되었는데, 갖가지 음식으로 더럽혀진 테이블을 행주로 쓱쓱 닦아낼 때면 빙판에 미끄러지듯 빠르게 청소가 되었다.
보리밥집은 언제나 인기가 좋아서 자리가 나면 순서대로 얼른 앉아야 했는데, 의자 모양이 그렇다 보니 자리에 앉으려면 요상한 자세를 취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앉아 있는 사람이 줄줄이 일어나야 하는 구조.) 다 먹고 나오는 사람도, 거기에 앉으려는 사람도 가위 모양의 다리 자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몸을 옆으로 비틀어 선 다음 한쪽 다리를 담넘기 하듯 의자 위로 넘긴 후 나머지 발을 끌어올려 의자를 뛰어넘는 식이다.
보리밥집 반찬은 십 여 가지가 넘었는데, 각각 큰 양푼이에 담겨 있었다. 말하자면 뷔페식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손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철로 된 양푼이에 김 폴폴 나는 보리밥을 한가득 담아 따뜻한 보리 숭늉과 함께 내어 주셨다. 그러면 사람들은 집게를 이용해 양푼이에 담긴 나물을 제 멋대로 골라 자기 밥그릇에 담았다.
우리 단골집은 특히 갈치 젓갈이 맛있었다. 나는 미역쌈을 좋아했는데, 얇은 미역을 골라 보리밥 한 숟가락을 올리고, 갈치 젓갈을 숟가락으로 콕 찍어 밥에 쓱쓱 발라 먹으면 쿰쿰하면서도 달달한 젓갈이 딱 알맞게 어우러져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나는 한 번에 나물을 넣어 비벼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 몇 번은 갈치젓, 쌈장, 양념장을 얹혀 미역쌈, 상추쌈을 싸 먹고, 그다음 맨 밥에 콩나물 무침, 무 생채, 미역줄기 등을 올려 몇 숟가락 먹은 다음 보리밥이 절반쯤 줄어들고 나면 온갖 생채와 나물들을 욕심내어 넣고 다시 한가득 비빔밥을 만들었다. 욕심낸 나물들을 결국에는 못 먹어 낼 때도 있었지만 마음껏 욕심낼 수 있는 보리밥집이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배불리 먹고 나면 아주머니들은 한껏 늘어난 몸빼 바지 허리 고무줄에 두 손을 집어넣어 쭉~넓히면서 숨을 크게 쉬곤 하셨다. '아이고 배부르다'는 시골아주머니들 몸의 언어였다.
보리밥집의 메뉴는 딱 두 개였는데, 하나가 보리밥이었고, 나머지는 새알 미역국이었다. 메뉴판도 없이 종이에 아무렇게나 세로로 적혀있는 메뉴를 보다가 새알 미역국이란 글씨를 발견하고는 나도 우리 아들처럼 깜짝 놀랐었다.
그 새알은 바로 찹쌀 옹심이였다. 미역을 푹~ 끓여 국물을 뽀얗게 우려낸 미역국에 동그란 새알이 콕콕 박혀있는 새알 미역국. 아주머니는 들깻가루도 인심 좋게 한 숟갈 가득 올려주셨다. 추운 날 따뜻한 새알 미역국 한 사발이면 언 코가 녹고 튼 볼살에 홍조가 올라와 얼굴이 시뻘게졌지만 속은 뜨끈하고 든든했다. 새알 미역국은 별미처럼 간혹 먹어주어야 그 맛이 살았다. 보리밥을 네 번쯤 먹다가 다섯 번째쯤 새알 미역국을 먹어주면 딱.
세월이 흐르고, 전통시장도 구역 정리를 하면서 언젠가 그 보리밥집이 없어졌다는 얘길 들었다. 하긴 그때 그 주인아주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아마도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장사를 못하셨을 수도 있겠다.
그 보리밥과 새알 미역국이, 겨울이 되면 가끔 생각이 나더라. 보리밥을 구현해 내기에는 각종 나물과 겉절이가 너무 많기에 불가능할 것 같았고, 새알 미역국은 흉내 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찹쌀 옹심이를 사보았다. 일전에 찹쌀 옹심이부터 만들어 보려고 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만들어 파는 찹쌀 옹심이를 구매한 것이다.
멸치 육수를 내고, 미역을 불리고, 미역을 한 솥 가득 끓였다. 시장 보리밥집에서 본 국물의 빛깔을 떠올리며 푹~ 미역을 끓여내자 어느 정도 뽀얀 국물이 만들어졌다. 다른 솥에 물을 끓이고, 찹쌀 옹심이를 20알 넣어 6분 정도 끓인 다음 찬물에 헹구어 냈다. 채에 찹쌀이 들러붙어 고생했지만 다행히 동그란 형태는 살아있었다. 여전히 끓고 있는 미역국에 찹쌀 옹심이를 퐁당퐁당 넣어 한번 더 끓여준 다음 넓은 그릇에 담아냈다. 그리고 화룡정점. 들깨 가루를 한 숟갈 가득 올렸다.
기억 속 미역국은 미역이 조금 더 초록빛이었던 것 같지만, 어쨌거나 새알 미역국이 완성되었다.
나는 이 추억의 맛을 아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새알이 새의 알이 아니라, 찹쌀로 만든 떡 같은 거라고 알려주자 아들은 용기를 내어 새알 하나를 입에 넣었다. 찐득찐득 이에 달라붙는 찹쌀에 아들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웩! 헛구역질을 했다.
엄마 미안해, 못 먹겠어.
아들은 찹쌀 옹심이를 도저히 못 삼키겠다며 미역만 건져 먹었다.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아들에게는 큰 도전이었을 텐데, 엄마가 열심히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한입 먹어준 게 어디냐 싶었다. 아들의 반응을 본 후, 나도 먹기 시작했다. 기억 속의 새알보다는 다소 큰 크기의 찹쌀 옹심이는 치아에 너무 들러붙어 먹기 불편했다. 절반쯤 실패다. 그래도 기껏 만든 음식인데 버릴 순 없지.
나는 김장김치를 가지고 와 쭉쭉 찢었다. 시원한 김치와 뜨끈한 새알 미역국은 환상의 짝꿍이었다. 그때 그 보리밥집의 맛은 아니었지만, 나는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하였다. 새알 미역국은 여전히 속을 뜨끈하고 든든하게 만들어 주었다. 추억을 곱씹고 사는, 우울한 마흔넷의 마음도 한결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