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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Dec 23. 2022

아이가 더 이상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원하지 않는다!

마흔넷_아직은 산타의 선물을 준비하고픈 나이.

올해는 산타할아버지께 무슨 선물을 받고 싶다고 했니?
글쎄...  
글쎄? 받고 싶은 선물이 없어?
응.


 초6학년, 내년에 중1이 되는 아들이 올해는 산타할아버지께 소원을 빌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아들은 여전히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는 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과 나는 해마다 산타할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였다. 매번 산타의 선물을 준비하면서 왼손으로 쓴, 엄마 아빠의 필체와는 다른 글씨로 아이에게 산타의 손 편지를 남겼다.


올해는 엄마, 아빠 말을 잘 안 들었지만, 앞으로 개선이 될 거라 믿으며 이 선물을 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

 

 거기다 산타의 실시간 위치를 추적하는 앱은 아이가 산타의 존재를 믿도록 만드는 일등 공신이었다. 


 아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주위에 산타 할아버지가 엄마 혹은 아빠임을 안 친구 녀석들이 '너는 그것도 모르냐'며 아들을 놀릴 때면, 아들은 '니들이 모르는 거야, 난 편지도 받았어' 하고 우기곤 했다.

 그때마다 이제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마음과, 아이의 동심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하면서 너무 고민이 되는 거였다. 어쨌거나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도록 둘 생각이었다. 아이가 산타할아버지에게 간절히 원하는 선물을 몰래 준비하는 재미도 있었고 말이다.


 2년 전에는 황당한 선물을 준비하기도 했다. 아들이 갖고 싶은 선물이, 로봇도 팽이도 아닌, 1인용 밥솥이었기 때문이다. 허허.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책상에 꽂아두고 혼자 밥을 퍼 먹으면 재밌을 것 같아.

 

 뜬금없이 혼밥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아들은, 1인용 밥솥을 갖고 싶다고 산타할아버지에게 기도했다. 매일 밤, 침대 위에서 온갖 다이내믹한 인상을 지으며 열심히 기도하던 아들의 모습은 차마 외면하기 힘들었다. 생각해보니 며칠 갖고 놀그다음부턴 쳐다보지도 않는 비싼 로봇 보다 밥솥이 훨씬 낫겠다 싶었다.

 아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밥솥이 들어갈만한 상자를 구하고, 정성스럽게 꾸몄다. 산타할아버지가 혹시나 밥솥 둘 곳을 못 찾으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나는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온라인으로 밥솥을 쇼핑했다. 1인용 밥솥은 사놓고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절충하여 3~4인용 밥솥을 구입하고는 그날을 기다렸다.

 산타 할아버지가 오는 걸 직접 보겠다며 잠을 자지 않겠다는 아들에게 산타 실시간 추적앱을 보여주며 한국에는 이른 아침에나 도착한다, 아이가 잠을 자지 않으면 선물을 못 주는 시스템이라고 뻥을 단단히 쳤다. 하하.

 아이는 꾸벅꾸벅 졸다 잠이 들었고, 드디어 나는 산타의 선물을 박스에 넣을 수 있었다.

 다음날, 1인용 밥솥이 아닌 것에 아들은 살짝 실망했다. 나는 1인용 밥솥은 한번 밥 해 먹을 때마다 설거지해야 하는데 귀찮지 않냐며 3~4인용이 더 좋은 거라고 말해 주었다.  책상에 놓고 밥이 먹고 싶을 때마다 퍼 먹겠다던 계획엔 차질이 생겼지만, 아들은 저녁마다 밥을 짓는 재미에 빠져 한동안 저녁 식사 준비를 도왔다.

 2년이 지난 지금, 남편이 장기 출장을 떠나 아들과 나, 단 둘이 밥을 해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고 밥솥이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모른다. ^^


 그렇게 매번 치열한 엄마 아빠의 작전 끝에 산타의 선물과, 산타의 손 편지를 받은 아들은 6학년이 되도록 산타의 존재를 철떡 같이 믿고 있었단 말이다. 주변 친구들이 아무리 산타는 없다고 말해도, 믿음이 굳건하던 녀석이 올해 처음으로 나에게 물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없어? 엄마, 아빠가 산타야?

 

 이제는 말해줄 때가 되었지. 암... 늦어도 한참 늦었지... 나는 사실을 말해주려고 했다. 그때,

 엄마 아빠에게 선물 받는 친구들은 산타를 안 믿으니까 산타에게 선물을 못 받는 거야. 그래서 엄마 아빠가 대신해 주는 거지. 믿는 자만이 산타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느니~

 

 남편이 올해까지만 봐 달라고 나에게 눈을 찡긋, 신호를 보내었다.



 그래서, 올해 산타 할아버지에게는 무슨 소원을 빌 거야?
글쎄.
갖고 싶은 거 없어?
없어. 소원 안 빌 거야.
왜???
그냥... 난 이제 다 컸잖아. 동생들이 선물을 받아야지.


 아들의 말인즉, 산타할아버지가 온 세상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자기는 이제 형아이기 때문에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 보다 어린아이들이 선물 꼭 받을 수 있도록.

 산타의 주머니 속사정까지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 기특해서 나는 그날 저녁 내내 실실거렸다.

 다음날 이런 얘기를 친구와 나누었는데, 친구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6학년 아들이 정말 모를 거라 생각해? 아들이 엄마의 동심을 지켜주는 거구만~


 정말 그런 것일까? 산타할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엄마 아빠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일까?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 양보하겠다는 기특한 말을 했다고?


 어쨌거나 그리하여 올해 나는 산타의 편지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고학년인 아들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돈이 들지 않으니 좋아야 하는데, 마음이 왜 이렇게 씁쓸한지? 산타에게 제발 제발 선물을 달라고 기도하던 꼬꼬마의 모습이 사뭇 그리워지면서 말이다.

 훌쩍 커 버린 아들과는 반대로 엄마 마음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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