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후로, 나는 가끔 잠에서 깨기 직전, 신에게 아이템을 선물 받는다. 내가 꾸는 꿈이 혹시, 글을 못 쓰고 있는 나를 측은하게 여긴 그분이 던져 주시는 아이템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꿈을 기억하려 안간힘을 쓴다. 제법 선명한 판타지를 꿈꾸고 나면, 나는 당장이라도 일어나 책상으로 달려갈까 생각한다. 하지만, 추운 새벽 따뜻한 이불밑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누운 상태로 정신을 초 집중하며 내가 꾼 꿈을 되새김질해 본다. 그리곤 내 정신력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찬찬히 가늠해 본다. 말짱하다. 꿈에서 완전히 깬 상태다. 그러니 지금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 꿈의 내용은 잠시 후에도 기억 날 것이다. 조금만 더 이불속에 있다 책상으로 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다 다시 잠이 들고, 일어나면 너무나도 선명했던 그 꿈은 까맣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꿈을 깨는 순간, 핸드폰에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다. 적어도 단어들을 남겨두면 기억이 좀 나지 않을까 하고.
오늘 새벽에 꾼 꿈도, 너무 생생했고, 스릴 있었고,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지면 멋지겠다고, 꿈속에서 생각했던 것 같다. 이건 분명히 글을 써내지 못해 조급해하는 나에게 그분이 주신 아이템이 확실하다고. 그래서 이번에야 말로 당장 일어나 서재로 가서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너무 말짱히 꿈에서 깨어나 있었다.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여전히 이불속이 너무 따뜻했다. 결정적으로 옆에서 자고 있던 아들이 나를 껴안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손을 뻗어 전화기를 집어 들고, 단어 몇 개 만으로도 충분히 꿈의 내용을 떠올릴 수 있도록 중요사항만 적어두기로 했다.
아들의 아침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주식을 좀 들여다보다가 곧 점심시간이 되어 또 아들과 밥을 차려 먹고 나니 오후 1시 반. 이제 그분이 주신 아이템을 정리해 보아야겠다고 톡을 열었다가 나는 당황하였다. 너무나 또렷했던_또렷했다고 기억되던 꿈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 이런...
시간차공격 / 마스터 / 사라지는 차 / 원재 코쿤/ 극과 극체험/ 물 건너가야 캠핑
무엇에 관한 이야기였을까. 원재와 코쿤은 아마도 전날 tv속에서 보았던_<내 친구는 나보다 똑똑하다> 프로그램에서 코쿤의 친구로 나온 래퍼 우원재가 문제를 푸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_이유로 꿈에 나온 것 같고. 나머지는 뭐지? 나머지도 실은, 전날 tv에서 본 연예인처럼 흔한 이유로 꿈에 나타난 것들일까?
잠깐 멍~ 하니, 새벽녘 꿈에서 깨어 꿈의 내용을 기록하던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어디까지가 꿈일까. 경계가 모호하다. 꿈을 기록하던 그 모습까지가 꿈이었을까. 생각하니 내 모든 행동이 애처롭다. 어이없다.
경제적인 압박에 시달리는 작가는 늘 조바심에 산다. 마음을 느긋이 가지기가 어렵다. 한 해만 더 글을 써 보자 다짐했지만, 당장이 궁하니 매 순간 이래도 되나? 하는 고민이 파고든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빨리 결실을 볼 수 있도록 글 쓰는데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 온통 나를 사로잡으며 꿈속까지도 점령해 버리는 것이다.
매번 속으면서, 이불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몸의 게으름도 문제고. 신의 계시를 받아서라도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는, 쓰질 못하고 있는 나의 부족한 재능 또한 문제다.
왜 노력하지 않냐고, 하루동안 정해진 루틴을 왜 지키지 않냐고, 계획한 공부를 왜 다하지 않냐고, 너는 오늘 하루를 보람되게 보내었냐고. 아들에게 잔소리하는 나는, 도대체 양심을 어디에다 두었을까.
아들에게 퍼붓는 잔소리가 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임을.
벌써 2월이 다 지났다. 하루하루 시간은 잘도 흐르는데,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과 압박감이 키 작은 나를 더 땅으로 꺼지도록 어깨를 짓누른다. 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