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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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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Feb 08. 2023

아버지를 또 이렇게 만난다.

마흔다섯_나의 눈물샘. 아버지에 관하여... 

며칠 후 건강검진이 예약되어 있다. 

사전 문진표가 도착하여 체크해 나가다 다음의 영역에 도달하였다. 

본인, 부모, 형제, 자매, 자녀 중에 현재 암에 걸리신 분이나 과거에 걸리셨던 분이 계십니까?


나는 폐암과, 췌장암에 있다. 체크를 하고, 부모에 체크를 했다.


건강검진 문진표에서도 아빠를 만나네. 


가만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파란색으로 채워진 4개의 칸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아프다. 아빠 생각이 나서 금세 시야가 흐려졌다. 


어제는 밤 9시, 동네 체육관에서 운영하는 필라테스 강좌를 듣고 있을 때였다. 이리저리 다리를 찢으며 운동을 하다 아빠 생각이 났다. 나는 부지런히 운동하며 자신을 가꾸던 아버지의 딸이므로, 내가 운동을 하고 있는 언제라도 당신 생각이 나는 게 이상하지 않다. 


 다리를 들고 가위 자세로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면서도 아빠 생각에 눈물이 나고, 고양이 자세로 바닥에 코를 박고 허리를 뻗고 있을 때도 눈물이 났다. 이렇게 한번 눈물이 핑~ 돌면 마음을 다스리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다 엉엉 울고 싶은 어떤 순간이 오면, 난 어른이야. 어른답게 이겨내야 해. 주문을 외듯 스스로를 다독인다.


어른스럽게, 어른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게, 이겨내야 한다는 게 참 힘이 든다.

 

나는 너무 슬프고, 매일 울고  싶지만 중학교 가는 아들 수학공부를 가르쳐야 하고, 영어 인강은 잘 들었나 체크해야 하고, 때때 밥을 챙겨주며 키를 키울만한 단백질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아빠가 너무 그립고, 믿을 수가 없어서 멍하니 모든 현실을 부정한 채 어둠 속으로 숨고 싶지만, 학부모 모임을 나가고, 교회 구역 모임을 나가고, 나의 어두운 기운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진 않도록 최선을 다해 웃고, 말하고, 먹고, 마신다. 


아이를 다 재우고, 고요한 밤. 불이 꺼진 거실이나 주방 한쪽 구석에서 팔에 얼굴을 파묻은 채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들은 눈물을 참고, 어른스럽게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2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병력과 마주하겠지. 그때마다 당신이 사무치게 그리워 눈물이 나겠지만, 시간은 눈치 챙겨 흐를 테고, 나는 무사히 건강검진을 받고, 일상을 살아낼 것이다. 


나, 사실 어른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나 너무 울고 싶어요. 너무너무 슬퍼요.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아요.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아요.


이 고백은 여기, 글 위에만 남기도록 하자. 


지금껏 아픈 아이를 키우며 경험해 봤지만, 운다고, 슬퍼한다고, 우울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마흔다섯의 어른답게 나는 현실을 마주해야 하고 울지 않고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실상 여린 마음을 가졌지만, 세상 누구보다 강한 아버지로 살았던 당신의 딸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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