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콩 Mar 27. 2023

기적은 고통의 애칭.

마흔다섯_매일 기적을 마주하고 살지만...

 유퀴즈에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이 나왔다.                       

23살이던 대학교 시절, 음주 운전자에 의해 그녀가 타고 있던 차에 불이 나면서 그녀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겪으며, 여러 번의 수술 끝에 겨우 살아난 그녀는 특별한 외모로 살아가야 했다. 자칫 절망 속에 빠질 수 있었던 그녀를 사회로 나와 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 덕분이었다. 그녀는 거울 속 낯선 자신에게 수없이 인사를 건네며 현실을 받아들이려 애썼다고 한다.


오래전 그녀의 이야기는 인간극장방영되면서 크게 화제가 되었었다.  

23살에 사고가 나고 23년 만에 교수가 되었다. 라임이 절지 않나요?


 오랜만에 유퀴즈에 출연한 그녀는 모교의 교수가 돼 있었다.


 23년 전 그때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해 나가는 그녀를 보면서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닌데 난 또 울었다. 덤덤하지 않은 일을, 덤덤하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시간이 필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동안 거울 속의 자신을 볼 때마다 낯설어 인사를 건네었다고 한다. 낯선 자신의 얼굴과 몸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은 안다.


 그녀가 길을 지나가면 힐끔거리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어떤 이는 아닌 척  다시 돌아와  그녀 옆을 또 지나가며 확인하기도 했단다. 그럴 때마다 어떤 기분인지. 그것도 잘 알지... 빤히 바라보는 것도,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그 이야기들을 눈물없이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들의 피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금도 울컥하는 순간은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울며 이야기하는 날 보다 울지 않으며 이야기하는 날이 더 많다.


 많이 많이 울어 봤거든. 울어봤자 달라지는 일은 없다는 것. 결국은 내가 받아들여야지만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다는 걸 알거든.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걸. 그러니 울지 않고 이야기하는, 밝은 그녀의 모습이 나에겐 아픔이더라.


 23살에 사고를 당한 후, 23년 만에 모교의 교수가 된 그녀의 이야기는 또 한 번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모두들 그때 살아난 그녀를 보며 기적이라고 말했겠지.  <기적>이라...  대부분의 기적은, 그렇게 죽을만치의 고통을 이겨낸 자에게 붙는 애칭 같은 거 아닐까? 


맞다! 나도 매일 기적을 보며 살고 있지.


 때마침 공연 전날이라 늦게까지 합창단 연습을 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넌 정말 기적 같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주었다. 영문을 모른 채 눈을 멀뚱 거리던 아들은 tv를 쓰윽 보다가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잠시 후 거실에 앉은 아들이 물었다.

내가 기적이야? 왜? 내가 죽을 뻔해서?


그렇지~ 태어날 때 '태반조기박리'로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겼고, 피부가 벗겨져 태어나 죽을 고비를 또 넘겼고, 생후 100일 즈음엔 원인을 알 수 없이  먹기만 하면 기절을 해서 또 한 번 죽을 뻔했었지. 하지만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으니 기적이지 뭐야... 정말 하나님은 너를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하시나 봐..


그럼 엄마도 기적의 여인이네? 엄마도 죽을 뻔했었잖아.


그래, 엄마도 너 낳을 때 죽을 뻔했지. 피를 많이 흘려서 쇼크가 왔었어.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받고 겨우 살아났지. 하나님이 엄마도 무지 사랑하시나 봐. 우리는 기적의 모자네~


 나는 아들과 함께 기적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기적과 같은 아이를 매일 보고 살면서 나는 뭐가 그리 불만족스러워 아들에게 매일 바라고, 성에 차지 않으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그러는 걸까.  급 반성이 되었다. 그럼 뭐 하나?

 뒤 이어 나온 '여정 선배' 보며, 캬~ 우리 아들도 저렇게 좋은 인성과 멋진 보이스를 가지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마지막에 나온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면서는 피아노 치길 좋아하는 아들의 재능이 한 스푼만 더해지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


 합창단 연습 때문에 피곤했는지,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자장가 삼아 내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차차. 내가 또 이런다! 거듭 반성을 했다.


 언젠가 자료에서, 아들이 가진 희귀 질환이 3도 화상에 가까운 고통을 겪는 일이라고 본 적이 있다. 그 엄청난 고통을,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고통을 매일 감내하며 살아내는 아들이, 이렇게 밝게 웃으며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난 불만이 많은 인간이라. 왜? 왜! 남들처럼 살길 바라면 안 되는 건데,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것 말고, 조금 더 나은 아들을 바라면 안 되는 건가? 스멀스멀 욕심이 끓어 올라 마음이 아프다.


 <기적>을 마주한 사람들은 대단하다, 장하다, 멋지다.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았을지 모를 고통을 이겨내 본 사람들은 그 기적의 무게를 안다. 마음이 무겁다. 수많은 고통의 시간과, 고통의 경험과, 많은 눈물이 모여 만들어 낸 그 <기적>의 주인공이기보다, 처음부터 기적을 겪을 일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 이다.


당장의 상황이 절망적일지라도 희망의 힘으로 오늘을 살아내면 꼭 계획한대로 흘러가진 않더라도 꽤 괜찮은 인생이 될것이다. 


 그녀를 보면서 꽤 괜찮을 우리의 미래도 그려보았다. 고통 가운데서도 헤피엔딩을 써 내려 가고 있는 이지선 씨가, 그녀의 밝음이, 그녀의 유머가 그래서 참 고맙다. 그녀의 앞으로의 삶을 응원한다. 또한 내 아들의 삶을 응원한다.


 넘치도록 아팠고, 셀 수 없이 울었고, 어쩌면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 가운데 있지만,  죽을 것 같은 <고통>이란 이름 대신  <기적>이란 애칭으로, 아들의 삶도 멋지고 찬란하기를. 끝내 헤피엔딩 이기를! 


작가의 이전글 마음을 주었던 언니가 이사를 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