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콩 Apr 17. 2023

아들뻘 소년들이 멋있습니다!

아줌마의 덕질_빛나는 소년들을 응원하는 이유

엄마, 낼 학교에서 영어 시험 본대.
그래? (... 어쩌지?...) TV 보면서 단어를 외우던지... (엄마 맞아?) 들어가서 공부하던지(잘도 들어가겠다..) 알아서 해~


 중1 아들이 다음날 영어 교과 시험을 본다는 소릴 듣고 10초 정도 고민했다. tv를 꺼? 말어? 아, 그런데 소년들이 생방송으로 가는 마지막 생존자 발표가 있는 날이다. 이 중요한 순간을 재방으로 볼 순 없지. 공부야 알아서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모르겠다. 잠시 후 아들은 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이 나눠 주신 프린터물을 들고 내 옆에 앉았다. tv를 보느라 프린터물은 손에 들려 있기만 할 뿐. 우리 둘은 열심히 tv 속 소년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모 채널에서 하는 빛나는 소년들의 이야기다. 데뷔할 9명의 소년들을 뽑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나는 일전에 프로듀스 101 시절부터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마흔이 넘은 아줌마 눈에도 잘생기고, 멋있는 청년들이 너무 많다. 어쩜 하나같이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고, 끼가 많던지. 볼 때마다 아재스럽게 나오는 감탄사가 있다.

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춤을 잘 춰? 노래 잘하는 사람도 왜 이렇게 많아?

 

 많고 많은, 데뷔 후보 소년들 가운데는 솔직히, 다른 꿈을 꾸었으면 싶은 수준 이하의 소년들도 꽤 있다. 재능 없이 무작정 꿈을 꾸는 아이들은, 대부분 열정도 부족하더라. 실력이 없다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기만 하는 소년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른의 입장에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반면 외모, 춤, 노래, 열정, 인성 어느 것 하나 뒤처짐이 없어 어쩜 저렇게 훌륭한가 싶은, 넘사벽 소년도 있다. 애초부터 눈에 확 들어와 센터 자리를 지키는 한 소년은, 뉘 집 자식인지 저 집 부모는 참 뿌듯하겠단 말이 절로 나온다. 옛날 같았으면 학창 시절에 춤추고 돌아다녀서 부모 속 꽤나 썩였겠단 소리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재능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그저 훌륭한 아들상이다. 

다른 집 자식이라 그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소년들을 칭찬하는 나에게 누군가 이런 말도 하더라. 아닌데? 난 정말 이 소년들이 멋있는데? 사실 나도 중학교 때 춤 꽤나 추던 여자다. 하하. 울 아들은 꿈에도 모르겠지만, 한때 교내 댄스팀 단장이었다. 매일 방과 후 학교 옥상에 모여 춤 연습을 하고, 몸이 으스러져라 나이키를 연습하던. 그저 춤이 좋아서, 땀 흘리는 그 시간이 좋아서 열심히 추었던 것 같다. 그래서 TV속에 보이는 저 연습생들이 저만큼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연습을 해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안다. 춤과 노래를 좋아했던 청소년기를 보낸 나로서는 우리 아들이 "엄마, 나 아이돌 할래"라고 했다면 아마도 대 환영을 하며 아이돌을 키우는 댄스학원을 찾아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아들은 대단한 '몸치'다. 


  내가 춤과 노래를 좋아했던 사람이라서? 못 이룬 꿈이라서? 소년들을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왜 이렇게 아들뻘 되는 소년들을 응원하고 매일 본방사수를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다름 아닌 '열정'이란 키워드로 집결되더라. 나도 정말 열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가난 때문에, 형편 때문에, 시도조차 못해본 꿈도 있었고, 그래도 어떻게 안될까 하는 마음에 무작정 열심히만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마흔다섯이 된 나에겐 열정이 없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벽을 넘어서고, 마침내 도달하며 얻는 성취감. 그것을 맛보지 못한 지 너무 오래되었고, 열심히 살고 싶다 말은 하면서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으며 그저 무기력하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열정이 빠진 마흔다섯에겐 멍~ 한 하루만 반복될 뿐이다. 

 '공허하다' 생각하던 나의 하루에 소년들의 그 뜨거운 열정은 젊은 시절 나의 열정을 떠올려주었다. 그래, 나도 열심히 살았었지, 나에게도 꿈이 있었지. 나에게도 다시 뜨거움이 찾아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TV를 보고 있노라면 살아남은 한 명 한 명의 소년들을 누구 하나 빠짐없이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저 열정을 가진 아이들 모두 다 꿈을 이루고 바르게 잘 컸으면 좋겠다. 




 데뷔를 꿈꾸며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은 소년들은 현재 18명이다. 어떻게 보면 이 '생존'이란 단어가 참 잔인하게 들린다. 어린소년들이 이겨내기엔 힘든 순간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소년들의 대부분은 10대에서 20대 초반이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이 형님 대접을 받고 있으니 데뷔를 꿈꾸는 아이들의 연령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 중에서 한 소년은 우리 아들과 불과 세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키도 크고, 잘 생긴 외모에 뛰어난 춤 실력을 가진 소년. 춤을 배운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데도 오래 연습생 생활을 한 형아들에 비해 뒤처짐이 없으니 아마도 타고난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아들뻘 소년에게 매력을 느끼고 응원을 하는 이유?! 그저 아기 같은 우리 아들만 보다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형아스럽게' 버텨 나가는 그 아이를 보면서 '잘 컸다' 생각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 번은 이 연습생이 연습도중 독감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병원엘 가지 않고 단체 연습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연습했다는 사연을 들었다. 이렇게 까지 연습을 포기할 수 없는 아이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엄마의 마음으로 걱정이 되었다.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게으름을 좀 피워도 좋을 나이인데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그 집 엄마 마음이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얼마나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을까 싶지만, 꿈을 위해 큰 도전을 하고, 노력을 멈추지 않는 그 집 아들, 그 자체로 참 멋있다. 잘 키웠다. 부럽다. 그래서 남의 집 아줌마가 열심히 응원하고 투표한다! (응? 아들아, 그렇다고 너와 비교해서 저 아들이 내 아들이었으면 하는 마음은 아니란다. 오구오구 엄마의 원픽은 언제나 우리 아들~알쥐? --;;)


 우리 아들의 손에 들려있던 영어 프린터물은 결국 밤 11시가 되어서야 쳐다볼 수 있었다. 시험공부를 뒤로 하고 TV를 함께 본 아들이 도전하는 형아들을 보면서, 그들의 열정을 보면서 시험공부보다 값진,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길 바라지만, 중1아들은 그저 해맑은 얼굴이다. 아들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영어 단어를 점검해 보기로 하고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 


 자기 전 나는 잊지 않고, 가장 빛날 소년을 위해 투표했다. 남은 소년들의 열정에 우위를 매길 수가 없어서 나는 매일 순서대로 한 명씩 투표해 주는걸로 소년들을 응원하기로 했다. 어린 나이에 서바이벌을 통해 데뷔를 해야 하는 소년들이 그 과정 속에서 상처를 받기보다는 마음이 더 성장하는 기회가 되기를. 모두가 꿈을 이루기를, 엄마의 마음으로 응원한다. 한편으론 나에게도 뜨거운 시간이 찾아오길 바라면서... 더불어, 우리 아들에게도 이 소년들 못지않은, 무언가에 대한 열정이 꽃피워지길 바라면서.

작가의 이전글 주말농장에 계급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