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인적성검사!

(7) 1박 2일, 이력서와 서류를 준비하고 뻗어버렸다.

by 돌콩

나는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마치 아침에 일어나면 굿모닝~ 인사를 하듯이 침대에서 눈을 뜨면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이 문장부터 써 보곤 했다.

마음이 조급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 정리를 대충 해 놓고 나면, 나는 엉클어진 머리에 대충 세수만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떤 날은 나라일터를 들락 거리고, 어떤 날은 시청 구인란을, 그러는 중간중간 작가협회 구인란을 뒤져보았다. 마땅한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경력이 적었다면 좋았을까? 십 년의 경력이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인란에 적당한 일이 없으면 알바를 검색했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알바 글이 넘쳐났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다 아는 나이라 솔깃할 게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청에 기획취재를 담당할 홍보팀 임기제 모집 공고를 보았다. 취재 작가로 시작한 나에게는 충분히 도전할 만한 일이었다. 쿵쿵!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모집 요강을 다운로드하고, 필요한 서류를 모으기 시작했다.


백만 년 만에 졸업한 대학교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내 학번이 뭐더라? 비밀 번호는 뭐고?

난관이었다. 수 십 번도 넘는 오류 끝에, 학번을 찾고 로그인해 졸업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벌써 지치는 느낌이었다. 다음 서류도 그다음 서류도 기억날 리 없는 비밀번호와의 숨바꼭질이 계속되었고, 하루 반나절을 꼬박 번호 찾아 삼만리를 한 후에야 서류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


시청에서 요구하는 양식에 맞게 이력서의 빈칸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으로 난감했다.


이력서의 빈칸은 근무한 회사, 근무한 기간, 퇴사이유 등의 순으로 기록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먼저 근무한 회사를 위주로 적자면, 마치 나는 한 곳에서 1년도 일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에 따라 방송국 본사에서 근무하기도, 외주 프로덕션에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근무지를 따라 적다 보면 자주 이직을 한 사람으로 보이기 딱 좋았다. 프로그램에 따라 기록해 보자니, 같은 이름의 프로그램을 다른 프로덕션에서 연이어한 적도 있고 한 번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한 적도 있기 때문에 적당치 않았다. 퇴사이유? 하... 그것 역시 난감했던 게,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한 편을 하면 끝이 나는 것이고, 아침 방송 같은 경우는 시청률에 따라 팀이 탈락하기도 했기 때문에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지 모르겠더라.

나는 최대한 빈칸 채우기 하는 심정으로 내 이력을 적어내려 갔다.


그러나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방송일을 할 때는 이력서를 쓸 일도 없었거니와 이력서가 곧 자기소개서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소개서'라는 걸 제대로 써 본 역사가 없었다.

아무리 십 년을 일한 작가였어도 처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건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작가인데, 뭔가 남들과는 차별성이 있는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서류 갖추는데 하루를 꼬박 소비하고도 나는 자기소개서 앞에 무너졌다. 일단은 형식 자체를 모르니 아이디어를 낼 수가 없었다. 원서 마감은 다음날 오후 6시.

아침부터 점심도 먹지 않고 서류 준비를 하던 나는, 거의 8시간 만에 의자에서 일어났다. 허리가 뻐근해다.


아이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문제집 풀이를 해주고, 설거지를 하고, 재우고 나니 열 시가 다 됐더라. 그날 밤 한 시가 넘도록 자기소개서 하나 써내지 못하는 날 보면서 이제는 글 쓰는 일을 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 고민했다. 다시 하던 일로 복귀할 게 아니라 스트레스 없는, 몸 쓰는 일을 찾아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도 이런 공고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놓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다시 써 보자며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지만, 머리가 핑핑 돌아가 잠이 오지 않았다. 마감 시간이 되기 전에 서류를 완료할 수 있을까? 뭐 정 아이디어가 없으면 평범하게 쓰면 되지 뭐. 심플이즈 더 베스트!


다음날 나는 이력서 마감 한 시간 전에야 겨우 겨우 자기소개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뭐라도 나온다. 그래서 잘 쓰긴 했냐고? 10년의 작가생활동안 가장 어려웠던 작문이었다. 이 자기소개서를 담당자들이 볼 거라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서류는 대면 접수밖에 안 되었다.


다행히 시청은 집 가까이 있었다. 남은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한번 더 점검하고, 최종 프린터를 한 다음 구겨지지 않게 L자 파일에 잘 넣었다. 면접을 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옷장을 뒤져 가장 깔끔한 옷을 골라 입었다. 긴장이 되고, 쿵쿵 가슴이 뛰었다. 후끈후끈 열감이 느껴지는 걸 보니, 안 봐도 얼굴이 달아올랐을 터였다.


시청에 도착해 담당자를 찾아갔다. 젊은 남자 직원이 편안한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나에게 서류를 받아 휘리릭 넘겨 확인해 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지하 식당칸 옆으로 나를 안내 한 남자는 '인적성검사'종이와 사인펜을 넘겨주었다.

난생처음 해 보는 것이었다. 빨리하라고 재촉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런 건 보통 오래 고민하면 답이 헷갈린다고 하더라. 보자마자 딱 떠오르는 걸로 해야 정확하다고. 검사지는 참 낯설었다. 아니, 검사지가 낯설다기보다는 공간 자체가 낯설어 긴장이 되었다.


집중하자 집중~ 나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손으로 몇 번 부채질을 하고는 다시 검사지 마킹에 집중했다.

'아, 이 사람 공무원으로 딱이야'내지는 '음,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하겠군' 하는 결과가 나오는 걸까? 궁금했다. 어쨌거나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싶었다.


1박 2일의 이력서 작성과 서류 접수와 인적성검사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온몸이 노곤했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침대에 털썩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고작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다. 이렇게 녹초가 될 일인가? 3박 4일을 밤새고 대본을 써도 끄떡없던 체력이었는데...

아~~ 흘러버린 세월이 야속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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