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학연, 지연이 만연하는 이 더러운 세상!
매일 같이 구인란을 뒤적거리던 어느 날, 학교 교사인 아들 친구 엄마가 학교 일자리들도 한번 알아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얼마 전 자기 학교에 행정직원을 뽑는데, 지원자가 달랑 한 명이어서 정년에 가까운 분이 일하게 됐다는 것이다.
혹시 알아? 당신 여러 가지 자격증도 있고~ 이력도 있는데~
늘 나의 경력을 안타까워했던 그의 조언에 솔깃했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근처 학교에서 채용 공고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길 여러 날, 어느 날 번쩍 눈에 뜨인 채용 공고 하나가 있었다. '기초학력도우미'. 게다가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였다!
기초학력도우미는 기초학습이 부진한 아이들 지도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공고를 보니 특별한 자격요건은 없었고, 대학졸업자면 지원가능하다고 적혀있었다.
논술 자격증과 1급 수학지도사 자격증을 가진 나로서는 지원해 볼만한 자리라 생각이 들었다. 하루 몇 시간씩만 일을 하면 되는 자리라 부담스럽지도 않았고.
도전해 볼 것이 생겼다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더 고민하지 말자 결심하고, 학교에서 제시한 양식에 맞춰 지원서를 작성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방송작가 경력 그 뭐 별거 아니고, 학교 일하는데 그 경력이 썩 도움 되지도 않을 테지만, 뭔가 이 정도 경력과 자격증, 봉사활동으로 아이들 지도한 경력까지 있으니 까짓 거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선착순 접수도 아닌데, 하루라도 빨리 지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큰 고민하지 않고 얼른 메일을 발송했다.
한편으론 살짝 기분이 다운되기도 했다. 내가 어쩌다 학교 알바 지원하는데도 이렇게 떨리는 신세가 됐을까.
어쨌거나 되기만 하면야 좋겠다 싶었다. 무언가라도 하면 나의 불안증도 좀 해소가 될 것 같았고.
그런데, 보기 좋게 땡! 탈락했다. 학교에서 친절하게 탈락 안내 문자까지 왔더라.
얼마나 쟁쟁한 지원자들이 많았기에 탈락했을까, 기초학력도우미의 문턱이 이토록 높단 말인가. 아마도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돌본 경력이 부족해서지 않았을까? 내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닐 거야. 이쪽 분야에 경력이 부족해서였을 거야... 나는 한없이 기분이 다운되는 걸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현실을 부정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학교 기초학력도우미에 탈락한 것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어마어마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 진실은 우연히 뒷집 사는 동생과 차를 마시다 마주하게 되었다.
애들 학교에서 기초학력도우미를 모집한다더라고~ 나 아는 언니가 얼마 전에 연락이 왔었어.
헛, 나는 뜨끔했다. 거기에 지원했다 땡 탈락했다는 말을 차마 부끄러워할 수가 없었다. 아, 뒷집 동생은 어린이집 보육 교사를 몇 년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력은 없고.
친한 언니도 학교 아는 선생님한테 연락을 받았는데, 이번에 두 명 뽑는다고 하더라고. 언니도 아는 사람이랑 같이 하면 좋으니까, 나한테 할 생각 있냐고. 그럼 얘기해서 같이 한다고 말하겠다고... 그런데, 일하는 시간이 짧아서 페이가 얼마 안 돼. 그냥 보육교사를 더 알아봐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고.
아니, 그거 며칠 전에 공고 났었고, 채용 끝난 걸로 아는데?
어, 학교에서 언니한테 일하러 오라고 먼저 연락이 왔다더라고. 언니는 예전에 학교 일을 해 봤대. 학교에서도 해봤던 사람이랑 하는 게 편하겠지...
그럼 뭐야, 공고는 폼이야?
난 순간 화가 났다. 고민하고, 지원서를 보내고, 탈락에 충격을 받고 내가 참 못나 보이고 비참했었는데, 그 모든 것이 정해진 각본이었다니!
동생에겐 할 수 있으면 해 보라, 나도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사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럴 거면 왜 공고를 내냐. 왜 엄한 사람 고민하고 지원하고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냐고.
사실 엄청 화가 났지만, 화를 내며 말하면 나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볼멘소리 정도로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를 하다 곱씹어 보니, 그 학교 참 너무했다.
동생은 보육교사 경력이 있어서 가능했던 건가? 학교 기초학력도우미 자격에 보육교사 경력은 없었는데. 어쨌거나 내가 안되면 동생이라도 되면 좋은 거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수세미로 박박 애꿎은 냄비 바닥만 밀어댔다.
학연, 지연으로 얽힌 이 더러운 세상! 학교에선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아니야, 사정이 있었을 거야. 채용을 할 때 학교만의 기준이 있겠지. 나는 그 기준에 못 미쳤을 뿐이고.
그래도 개운하지 않아. 개운하지 않다고! 우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