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나의 경력단절은 몇 년일까?

(3) 경력단절 계산, 어떻게 해야 할까요?

by 돌콩

멀쩡하던 10년 차 노트북이 고장 난 후, as센터로 가져가 겨우 살리긴 했지만, 언제 수명이 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음에 또 고장이 난다면 회복 불가.


10년이면 그 아이도 일 할 만큼 했다. 마침 화상영어를 시작한 아들에게 컴퓨터가 필요해 수리해 온 노트북을 넘겨주었다.


아들에게도 컴퓨터가 한 대 있긴 했지만, 사실 컴퓨터라기보다는 모니터에 가까운, TV의 기능에 컴퓨터 기능을 더한 아이였다. 코로나 기간, 온라인 수업을 할 때 요긴하게 쓰긴 했지만, 언젠가 코딩 수업을 하다가 용량이 모자라 컴퓨터 내부에 있는 쓸데없는 것들을 죄다 지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글까지 지워버려서 그 컴퓨터로는 한글작업조차 할 수 없었고, 용량이 적다 보니 화상영어 앱을 깔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들과 컴퓨터를 바꾸고 난 후, 나는 컴퓨터로 노란 창, 초록 창을 열어 뉴스를 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 가끔은 쇼핑을 하기도 했지... 이력서를 작성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러니까 나는 이력서의 ㅇ자 하나 적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즈음, 남편이 제멋대로 노트북을 하나 장만했다. 회사 출장에서 사용해야 할 것 같다나? 그것도 아주 고급진 사양으로 말이다. 제가 벌어 제가 쓴다니 뭐라 말할 수도 없고, 나는 그렇게 턱턱 필요한 것을 잘만 사는 남편이 부러웠다. 만 원짜리 티셔츠 한 장을 사려고 해도 한 달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결제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나와는 다르니 말이다.


어쨌든, 주가 지나 남편의 출장이 끝나고 그가 노트북을 두고 출근을 하면서 드디어 나는 이력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한글 작업을 하다가 남편이 올 때가 되면, 저장한 내역들을 모두 불러 흔적을 지우기 바빴다. 마치 바람피운 남편들이 집에 귀가하기 전, 마지막으로 애인에게 '나 집에 들어간다, 사랑해'문자를 남기고는 혹시나 아내에게 들킬까 봐 문자와 통화내역을 깔끔하게 지우는 것처럼 말이다.


는 내가 다시 취업을 해 보겠다고, 이력서를 작성하던 것을 남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냥 뭔가 취업이 턱 하니 되었을 때까지는 나의 이런 고민과 수고를 남편에게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인지 모르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왜 애는 같이 만들었는데 , 동갑내기 남편은 경력이 쌓이고 나는 경력이 단절되어야만 했는지 따지고 보면 속상한 일이었다.


오늘 밤에~ 아무도 몰래~ 이력서를 작성해야지 싶었다. 나는 매일 밤 남편이 잠들고 나면 서재로 가서 이력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우선은 경력부터 정리해 보자고 예전에 작성해 놓은 경력사항들을 찾아보기로 했는데. 아뿔싸. 노트북이 망가졌었지. 따로 USB에 저장해 둔 것도 없어 난감했다. 메일을 뒤져 3~4년 차 서브작가 때 작성해 둔 것으로 보이는 이력서 한 통을 찾았지만 나머지 경력을 어떻게 정리하나 고민되었다. 그러다가 통장 정리를 해 보기로 했다. 원고료가 입금되어 있는 내역을 바탕으로 일한 기간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짜다 짜.


입금 내역을 살펴보다가 나는 막내 때의 페이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정말 박봉을 받으면서 영혼을 다 받쳤구나.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3일 동안 한 시간 겨우 자면서 그 돈을 받으며 그렇게 일하지는 못할 거 같았다.


한참 동안 통장의 입출금 내역과 눈싸움을 한 후에야 나는 나의 경력을 정리해 낼 수 있었다. 출산 전 9년, 출산 후 약 1년, 합이 10년을 일했더라.


그런데, 9년을 일하고, 3년을 쉰 후 1년을 일했다가 오래 쉬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경력단절을 몇 년이라고 해야 하는 거지?


마지막 일을 한 날로부터 지금까지 딱 10년이 되었더라. 그런데, 3년 쉬었던 경력을 경력단절에 포함을 해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는 거다. 무조건 마지막 일을 한 날로부터 따지자면 10년 일 것이고, 쉰 경력을 다 합치면 3+10년인데, 이거 어떻게 계산하지?

조용히 '경력단절'을 검색해 보았다.


15~54세 기혼 여성 중 현재 비취업 상태에 있는 여성으로 결혼, 임신 및 출산, 육아, 자녀 교육(초등학생), 가족 돌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여성을 말한다. 조세특례제한법에서 규정하는 경력단절여성은 ▷해당 기업에서 1년 이상 근무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결혼·임신·출산·육아 및 자녀교육의 사유로 해당 중소기업에서 퇴직하였으며 ▷해당 기업에서 퇴직한 날부터 3년 이상 15년 미만의 기간이 지난 여성으로.....


헛. 경력단절이 15년 이상이면 그 말 자체도 쓸 수가 없겠군.

그냥 마지막 일한 날로부터 경력단절 계산을 해버리자. 조금이라도 경력단절 기간이 적어지도록. 헤헤.

하긴, 아들 나이가 벌써 14살이지...


눈물 콧물 쏟으며 정신없이 아이를 키워온 동안, 채워지지 못한 내 경력의 현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내가 체감하는 것 보다도 훨씬 많이 흘러버린 시간에 놀라버렸다. 착잡했다.


어쩔 수 없었잖아. 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대신, 아이를 케어하는데 온 맘과 온몸을 다 받쳤잖아. 그러면 된 거지, 그건 너의 특별한 경력이잖아.


문득 이력서 경력란에 10년 경력단절 대신 '육아'경력을 써낼 수는 없는 걸까? 생각다.

육아도 경력인데, 육아 14년 차인데... 왜 아줌마를 위대하다고 하겠어? 엉? 14년 아이 돌본 경력이면 세상 못할 일이 없는데..


나는 아이를 키우며 지나 보낸 시간을 허무하게 느지 않으려고 육아경력도 경력이라고 스스로 우격다짐해 보았다. 언젠가 경단녀 대신 경보녀(경력보유여성)란 말을 쓰자는 얘길 본 적 있다. 그렇지 그럼! 우린 경력을 보유한 여성이라고!! 업무능력 플러스 육아경력!


나도 안다. 육아경력을 고려해 주는 업체는 없을 거라는 거.

내 마음은 아직도 20대 청춘인 상태로 머물러 있는데, 어버린 내 몸과 흘러버린 시간이 너무 약속했다.


과연, 10년의 경단녀는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어느 자리에서 다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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