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력단절을 단절시킨 날의 이야기
밤새 잠을 설친탓에 알람소리가 5분 간격으로 울렸대고서야 겨우 일어났다. 반쯤 감은 눈을 뜨며 좀비처럼 어슬렁 거실로 나갔다. 척추측만인 아들의 허리를 위해 사놓았으나 방치 중인 '스파인코렉터'를 오른쪽 앞발로 무심하게 쓰윽 당겨와 발 앞에 놓았다.
움푹 파인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앞으로 나란히 한 채로 허리를 슬슬 펴 등을 눕혀본다. 윽~으윽~ 소리가 절로 난다. 양손을 밖으로 휘~ 돌려준 다음 다시 앞으로 나란히 하고 허리를 천천히 올려 세운다. 곡소리를 내며 몇 번 이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뻐근했던 몸이 한결 났다. 좀비에서 인간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을 시작하려 하던 대로 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급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집중을 못했다.
우선 아들의 아침상을 차렸다. 신경 쓴다고 특별한 반찬이 식탁에 오르는 건 아니었지만, 며칠 동안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못한 관계로 아들의 아침상이 다른 때보다 부실한 것 같다.
엄마의 잔소리 없이도 집어 먹을 수 있기 편하도록, 주먹밥과 삶은 달걀, 바나나를 잘라서 한 접시에 올려놓고, 물과 한약을 준비해 접시 옆에 두었다.
밥 먹어, 아들~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양치를 하고 평소 아침에 잘하지 않았던 가글까지 완료했다. 부지런히 머리를 말리고, 백만 년 만에 화장을 했다. 코로나기간 동안 화장할 일이 없어 방치되다시피 한, 개봉한 지 3년은 족히 된 팩트를 찍어 얼굴에 발랐다.
패왕별희가 따로 없군. 하고 혼잣말을 하다가 '패왕별희'를 아는 사람은 옛날 사람일까? 생각했다.
쿨하게 대충 찍어 바른 화장과 달리_실은 뭐 화장할 제품이 없어서_, 액세서리는 신중하게 선택했다. 실은 며칠 전, 좀 심플하면서도 늙어 보이지 않는 액세서리를 하고 싶어 정말 오랜만에 내 돈을 주고 귀걸이와 목걸이를 구입했다. 금 귀걸이와 목걸이를 살 돈은 없어서 저렴한 은으로 선택했다.
첫 출근 때 어떤 옷을 입을까, 하루 내내 패션쇼를 하다가 요즘 젊은이들처럼 통 큰 슬랙스에 셔츠를 입어보면 어떨까 해서, 통 큰 슬랙스와 그에 맞는 스니커즈와 셔츠를 구입하긴 했지만, 뚱뚱한 내 몸이 문제였다. 이렇게 저렇게 입어봐도 도저히 예쁘지가 않았다. 하필이면 젊은 감각을 따르겠다고 구입한 옷들이 죄다 내 몸에 어울리지 않아 어정쩡했다. 결국 새 옷을 사고도, 나는 늘 입고 다니던 검정 슬랙스와 검정 셔츠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의상이 검정이 되고 보니. 저승사자 친구 콘셉트가 되지 않으려면 액세서리라도 좀 밝은 걸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첫 출근에 착용하려고 구입해 둔 액세서리는 너무 심플했다.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귀걸이며 목걸이는 너무 요란해 출근용으로 적당해 보이지 않았고. 그리하여 한 열 번쯤은 꼈다 뺐다 귀걸이를 착용해 보다가 결국은 시간에 쫓겨 그만 처음에 생각해 둔 실버 액세서리를 착용하게 되었다.
전날 미리 챙겨 둔 가방을 거실로 가져와 식탁 의자에 턱 하니 놓고, 충전 중인 핸드폰을 보며 식탁에 앉았다. 아들 아침을 준비하면서 접시에 담아 둔 자투리 과일을 아침으로 먹었다. 당도 높은 바나나인데도 입 안에서 푸석하게 씹혔다. 시작부터 지친 기분이었다. 일어 나서 아이 아침을 챙기고, 머리를 감고 말리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하고 내 아침을 먹으려 자리에 앉기까지 쉴 새 없이 움직이니 한 시간이 후딱 지났다. 한 손으로 버스 시간을 살피며 넘어가지 않는 바나나를 꾸역꾸역 삼키고 있을 때였다.
엄마, 이제 10분 남았어.
부스스한 머리로 막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던 아들이 버스 시간표를 실시간으로 봐 주며 말했다.
밥 다 먹고, 그릇을 싱크대 설거지 통에 넣어 둬~
나는 아들에게 밥을 꼭 다 먹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욕실 옆 전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맘에 안 든다. 어쩜 이렇게 없어 보이는 건지.
아들, 밥 얼른 먹어~
나는 신발을 신으면서 한번 더 아들에게 아침밥을 남기지 말라고 강조했다.
아들~ 엄마 출근한다!
응, 잘 다녀와~
나는 한 손에 핸드폰을, 나머지 손으로 노트북이 든 가방을 무겁게 들고 종종 걸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아직 자차가 없는 관계로 2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리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1 시간을 가야 한다. 설렘으로 가득차도 모자를 첫 출근길이 시작부터 힘 빠진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20%의 긴장과 30% 정도의 부담감, 48%의 멍~함과 2%의 설렘 정도?
하, 십 년 만에 출근하는데 어쩜 기분이 이럴 수 있지?
파이팅!
남편에게서 깨톡이 왔다. 이어서 나의 첫 출근을 알고 있는 동네 친구들에게서 파이팅이 이어졌다.
잘할 수 있겠지?...
나는 버스가 오는 쪽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던 나의 출근길이 시작되었다. 그러니 부담스러움은 어쩌면 당연한 감정일지도 모르지.
엄마도 일해~라는 아들의 말에 발끈하여, 아들~ 엄마 출근한다! 외치게 된 오늘.
경력단절 10년, 다시 출근에 성공한 마흔다섯 나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