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던 세계, 연예계
"밤얼음, 오늘만 눈 딱 감아.
이 바닥 원래 그런 거 몰라?"
팀 활동이 정리되고, 솔로 무대를 돌던 시기였다. 무대를 마치고 돌아오던 밤. 도착 알림음이 울렸을 때, 창밖에 비친 건 집이 아니었다.
도심 끝자락. 말하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는 간판 하나가 희미한 불빛을 토하고 있었다.
"노래? 연기? 그딴 거 백날 잘해도, 다른 걸 못 하면 소용없는 거 알지?"
대표가 앞 좌석에서 몸을 돌렸다. 입가가 비틀리며 웃었다.
차 문이 열렸다. 몸은 내렸고, 정신은 남아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아래로 계단이 이어졌다.
레드카펫을 흉내 낸 블랙카펫.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발밑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통로를 지나는 순간, 한 여자와 부딪혔다. 화장 사이로 번들거리는 눈물 자국. 시선이 한 번 더 돌아갔다.
그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하얀 도화지 위를 검은 붓질이 가로지르듯, 사람들의 발소리가 빠르게 번졌다. 직원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바닥에 고정돼 있었다.
발설이 계약 위반이어도, 그 세계에선 보는 것부터가 이미 계약이었다.
복도의 끝, 금빛 문 하나가 번쩍였다.
"초대받은 사람만 올 수 있는 자리."
한파 속 무대와 어울리지 않는 얇은 의상.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무대를 위한 게 아니었다. 이 자리에 맞춰 입혀진 옷.
등이 떠밀렸다.
문 앞에 서자 안쪽에서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땀이 원피스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 차가움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후회는 늘 지나간 시간의 끝에 도착한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앞에 내밀어졌던 처음 소속사와 맺은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 데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내 손으로, 내 앞의 문을 열었다.
웃음소리가 한순간 쏟아지다 멎었다.
차가운 조명이 나를 훑었다. 무대의 빛과는 다른 눈부심. 시선들이 불쾌하게 들러붙었다.
"안녕하세요. 밤얼음입니다."
나와는 상관없을 거라 믿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진짜와 가짜 사이를 떠돌던 소문들, 소리 없이 사라진 이름들. 이곳에서 이름은 브랜드가 되었고, 평가는 등급이 되었다.
이 세계의 규칙은 그렇게 증명되고 있었다.
수치심을 입은 마네킹.
그날의 이 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