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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들과의 전쟁, 아니 소통

내가 있던 세계, 연예계

by 밤얼음

[죽어버려.]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 내 번호가 인터넷에 노출되었다.


[네가 뭔데 우리 오빠랑 사겨? 비ㅡ취.]

[사귀는 거 아니라고 말해줘요, 제발.]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


평생 들어도 넘칠 욕들을 그때 다 들었다. 내가 만수무강한다면, 아마 그들 몫도 있겠지.


번호를 바꿔도 금방 알아내는 그들이었다. 기괴했다. 휴대폰은 켜자마자 30분도 안 돼서 전원이 나갔다.


내 욕은 버텼어도, 참을 수 없는 건 가족 욕이었다. 광기는 결국 선을 넘었다.


팬 선물 박스 안에는 예쁘게 포장된 흉기와 붉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회사에서는 법적 대응을 선포했다.


혼자 잠깐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 누군가 계속 뒤에서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빠르게 걷자, 뒤의 걸음도 빨라졌다. 뛰었다. 뒤의 걸음도 같이 뛰었다.


경비실 앞에 멈춰 서서야 뒤를 돌아봤다. 모자를 눌러쓴 여학생이 나를 노려보더니 돌아섰다.


그때 생각했다.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있는 게 답이 아니다. 그래, 맞대응이다.


그 사건 이후, 모처럼 휴가가 생겼다. 나는 며칠 동안 그들에게 직접 답하기 시작했다.


ㅡ 우리 오빠랑 사귀냐?

"안 사귀어요."


ㅡ 근데 왜 기사 떴어?

"저도 그게 궁금해요."


- 툭 -


전화가 끊겼다. 무대응이 대응이라더니, 오히려 대응이 무대응이었다.


수백 통의 통화, 메시지. 하루가 통째로 잘려나갔다. 생각보다 간단할 줄 알았으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연습생으로 길러온 멘탈이 내 빽이었다. 전쟁을 받아들였다.


ㅡ 여우 같은 년아.

"죄송해요..."


ㅡ 노래도 못하고 연기도 못하는 게.

"더 연습해 볼게요."


ㅡ 오빠는 너 안 좋아해.

"알면서 왜 그래요..."


그들은 지치지 않았다.


삼일째 되던 늦은 밤.


매일 욕설을 보내던 번호에서 이번엔 다른 메시지가 왔다.


[나 오디션 떨어졌어. 죽어버릴 거야. 나도 아이돌 돼서 우리 오빠 만나고 싶었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참 신호가 가고 받은 목소리는 너무 어린아이의 음이었다.


ㅡ ...여보세요.

"죽지 마요..."


ㅡ ...네?

"다시 도전해요. 좋아하니까 노력한 거잖아요."


...


잠깐의 정적.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잠시 후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언니, 왜 나한테 화도 안 내고 말 잘해줘요?]


욕만 하던 아이가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아무튼, 죽지 않아 줘서 고마워요.]

[죄송했어요... 언니.]


그날 이후로 안티와의 전쟁은, 안티와의 소통이 됐다.


더 심해지는 공격도 있었고, 점점 줄어드는 공격도 있었다. 신기했다. 그들에게도 진심은 닿았다. 사람은 그런 것 같다.


누구에게나...는 아니더라도, 웬만해선 진심은 통했다. 다만, 그 진심이 어디까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새벽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ㅡ 누나 미안해... 괜찮아? 밥 먹 수 있어? 거하게 쏠게!


"큰일 날 소리 하지 마. 죽다 살았으니까, 당분간 눈도 마주치지 마."


그래도 이 세계는, 여전히 살얼음판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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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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