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단단하고 빛나지만 쓸쓸해져버린
단단함과 매끄러움, 강인함과 여전함
며칠 전 등기를 보낼 일이 있어서 우체국을 방문했다. 급하게 방문하느라 봉투를 준비하지 못했는데 마침 봉투 판매 코너가 보여 기쁜 마음으로 다가갔더니 제일 작은 등기 봉투가 5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뿔싸, 내가 가진 결제 수단은 플라스틱 카드랑 카카오페이 밖에 없는데..
집안에 있는 동전통에 보관되어 있던 100원짜리 동전은 여전히 단단하고 어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처럼 매끄러웠다. 동전 옆면을 둘러싼 톱니 부분은 억울하게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탈옥용 톱으로 쓸 수 있을 만큼 예리했고 손안에 있는 동전의 물리적 가치는 동전의 발행 연도로 추정되는 2015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인플레이션은 '물리적'이 아닌 '물질적' 가치라고 생각하자. 그간의 물가 상승률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테니)
하지만 그런 단단함과 매끄러움, 강인함과 여전한데도 동전이 서 있을 자리는 점점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지하철에 설치된 자판기조차 카드 결제가 가능해졌고, 이제는 그 카드마저 스마트폰을 이용한 페이 결제로 대체되고 있다. 세상의 변화라는 현실 앞에서 스스로를 굳건하게 지켜오던 동전의 존재는 그저 비자발적으로 희미해져만 가고 있었다.
좁아져만 가는 동전의 입지처럼 해가 지날수록, 이 넓은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이 서 있을 발판은 점점 줄어만 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이가 들었어도 내 마음은 아직 한결같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머릿속의 세상과 달리 진짜 세상에서 나는 방황하고 있다.
누군가는 박수받을 때 떠나야 한다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한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한결같고 강인한 동전도 아무 잘못 없이 쓸쓸하게 퇴장해 가는 현실을 보면 해가 갈수록 변색하고 물렁물렁해지는 나라는 사람의 처지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강하든 약하든, 한결같든 변덕스럽든, 그저 세상 앞에서는 그저 희미해져만 갈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