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도 멀리서 매끄럽게 전달될 수 있다면
매끄러운 플라스틱과 고무의 단단함
그 이상의 무언가
최근 출시되는 TV들은 공통적으로 매끈한 느낌의 디자인에 외부 버튼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리모컨이 어디 있는지 찾다가 어쩔 수 없이 TV에 있는 전원 버튼을 누르려고 시도하다 보면 전원버튼을 찾는데 또 한 세월이 지나고야 만다. 그렇게 TV는 사생활을 포함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세상의 흐름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존재의 일부를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리모컨이라는 물체를 처음 잡아본 것이 언제인지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잡아봤던 리모컨이 매끄러운 플라스틱 본체에 고무로 된 버튼이 있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21세기의 어느 더운 여름날 다시 만져본 리모컨 역시 플라스틱과 고무의 촉감이었고, 처음 만졌던 리모컨처럼 손에 잡았을 때 매끄러움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꽉 차있는 느낌이었다.
소파 끝에 누워서 버튼 하나를 누른다,
화면이 띵! 하고 켜진다.
소파 끝에서 뒤척이면서 다른 버튼 하나를 누른다,
팍! 하고 화면이 다른 채널로 넘어간다.
소파 끝에서 잠이 오는 것 같아서 또 다른 버튼 하나를 누른다.
픽! 하고 화면이 꺼진다.
이렇게 TV와 나의 관계는 아주 멀리서도 일방통행으로 아무런 다툼도 갈등도 없이 편안하게 마무리된다.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전달받지도 못해서 무수한 갈등이 벌어지는 이 세상의 어떤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언젠가 지나가면서 본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의 뇌에 특정한 칩을 이식하여 생각만으로 마우스를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개발 중이라고 한다. 손가락이 아닌 사람의 뇌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을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양손이 편리하긴 해도 신기하진 않을 것 같다. 이전에 일어 났던 일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뿐이니까.
하지만 나의 마음속 깊이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비록 이번 생에서는 말과 글과 행동으로 전하는데 실패했지만 언젠가 개발될 두뇌칩이 모두의 머릿속에 이식된다면 그때는 전파를 타고 그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아무런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내 마음이라는 메시지가 상대방에게 온전하게 전해졌음에도 여전히 상대방의 반응이 전과 다르지 않다면 그때는 완전히 상대방을 잊을 수 있을까. 기왕 두뇌에 칩을 이식했으니 기억도 지워달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