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만나지만 늘 처음 만나는 것처럼 반겨주는
투명했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오늘도 이번 달의 생존을 위해 출근을 하고야 말았다. 언제나 같은 곳에서 마주치는 유리문은 나를 반겨주는 대신 출입증을 달라고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정확히는 먹고 살기 위해서는 출근을 해야 하니 출입문을 통과해서 사무실에 안착해야만 하는 내 마음이 그런 신호를 자발적이라는 이름 아래 수신하는 것이지만, 여튼 매일 같이 보는 사이인데도 전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유리문에 새삼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손끝에 느껴지는 유리문의 첫 촉감은 매끄럽기보다는 단단했다. 혹시 누군가 출근 전에 마음 복잡한 일 때문에 한눈을 팔다가 유리문에 부딪쳐도 깨진 유리에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 단단함 덕분에 누군가는 다치지 않게 되었고, 누군가는 쉽사리 유리문을 깨고 침입할 수 없겠지만 어느 쪽이든 유리문의 촉감은 자칫 연약해 보일 수 있는 투명함과 달리 쉽사리 쓰러지지 않을 것만 같은 강인함으로 다가왔다.
살다 보면 아주 뻔하고 다 아는 것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을 겪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고난을 겪는 경우가 있다. 내가 그동안 해온 사회 경험과 인생 역정에 비추어 보면 그 정도 일은 '척 보면 척', '손만 대면 끝'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셨는데 아뿔싸. 그것은 늪이었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구렁텅이였다. 내 눈에 보이는 투명함은 내 무지로 인한 인식능력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착각일 뿐 실제로 내가 바라보는 대상은 아주 단단하고 결코 쉽게 통과할 수 없는 난관이었던 것이다. 출근길의 유리문처럼.
투명하다고 해서 언제나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투명하게 다 보인다는, 그래서 내가 다 안다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 화를 불러오는 것이다. 그게 사람이든 내가 하는 일이든 다 아는 것은 없다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면서 오늘도 유리문을 무사히 통과하며 느꼈던 서운함과 투명하다고 얕봤던 미안함을 덜어내기 위해 말꼬리를 남긴다.
"퇴근길에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