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 적절함 그럼에도 어긋난 버린 무언가
인간 세상에서의 '매끄럽다'는 특성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과 달리 부착 방지판의 매끄러움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밀어내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오래전에 봤던 어떤 애니메이션이 기억난다. 사람들은 몇십 년 전에 있던 어떤 사건으로 그 이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세계는 우리가 살던 어떤 세계와 아주 비슷하지만 발전된 과학 기술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라는, 정확히 말하면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이유가 나중에 밝혀지는데, 실은 그 도시는 거대한 스튜디오 내부였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연기하는 인형(문자 그대로의 인형이 아니라 주어진 연기를 하도록 지정되었다는 점에서)에 불과했으며,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밖에서는 우리가 감상하는 한드, 미드, 일드와 같은 거대한 극의 한 에피소드였다는 사실, 이것이 그 작품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이다.
애니메이션은 오래전에 끝이 났지만 내 일상은 오들도 다시 시작된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매일 (거의) 비슷한 것을 먹고, 매일 거의 같은 사무용품으로 세상을 접하다 보면 세상이 앞에서 설명한 애니메이션의 세계처렴 느껴질 때가 있다. 나 역시 이 재미없는(적어도 나에게는) 극의 단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AI의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여전히 나와 같은 사람들은 새벽부터 어딘가를 바삐 향한다. 누구 말대로 사람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지가 몇십 년 전인데 여전히 수천만명의 사람은 9 to 6의 삶을 이어나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라도 살면 호강이고, 좋은 점은 잘 모를 AI, 무인화 같은 단어가 내 직장에 침투하면 내 자리는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앞에서 말한 도시의 일원으로서 스튜디오 안에 있을 자격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한다. 틀에 박힌 삶이 죽도록 싫다고 속으로 외치면서도 틀에 박힌 삶조차 없는 인생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어 어떻게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 구원 없는 무간지옥 속에서 눈에 띈 것이 매일 출근하던 길에 있는 전신주에 매달린 광고물 부착 방지판이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부착물들을 없애기 위해 마련된 이 녹색판은 설계부터 장착까지 그 목표에 적합하게 설게 되었고, 두 손가락으로 방지판을 만져보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한마디로 '목적으로 충만한 삶'이었다.
그리고 부착 방지판은 항상 부착되어 있어야 할 전신주, 가로등, 신호등과 같은 곳에만 있고 다른 곳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우사인 볼트가 달리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트랙 위를 달리고, 손홍민이 축구라는 스포츠를 위해 조각된 것처럼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처럼 광고물 부착 방지판은 항상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자리에서 충실한 역할을 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그렇듯 부착 방지판 역시 어두운 뒷면이 있다. 그런 노력의 결실은 그 노력과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노력은 충분했다, 있어야 할 장소도 잘 골랐다, 심지어 목표에 적합한 수단도 갖췄다. 그럼에도 '도시미관'을 해치는 광고물이 상당수 사라진 이유는 바로 '광고시장'이라는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여전히 일상은 광고물로 넘쳐나지만 그 중심지는 스마트폰이라는 개개인의 손으로 이전되어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주변에 붙어있는 무언가를 보지 않는다. 만약 전신주나 가로등에 광고물을 부착하는 것이 유효한 광고수단이라면 우리는 삼성, 쿠팡, 애플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로 무장시킨 신호등을 보고 있었을 텐데 불과 10년 전을 돌이켜 봤을 때 일상 속 전단지는 점점 눈에 띄지 않게 되어 버렸다. 아니, 시선을 끌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동네 헬스장 홍보조차 전단지 배부보다는 인스타그램이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더 커졌기 때문이지 광고물 부착 방지판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 이 사실이 공공기관에 받아들여지는 순간 광고물 부착 방지판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는 예산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저 부착판을 만드는 회사들은 어떻게 될까. 내가 무대 위에서 매일 같은 일을 하며 내 자리와 역할이 있다고 입증하기 위해 애쓰지만 내가 있는 자리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의 변화에 의해 쓸려나갈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그저 노력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지'라고 한마디 하고 떠날 수 있을까. 우사인 볼트는 트랙을 떠나도 광고 모델로 살 수 있고, 손홍민 선수는 축구를 하지 못해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내 자리를 떠나서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보여줄 자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