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면 괴롭고 없으면 불안한 마법의 아이템
사원증을 목에 걸 때마다 언제나 답답함의 그늘 속에 가려진 안도감의 무게까지 느껴진다
나는 회사원이다. 자영업자도, 프리랜서도, 사장도 아닌 그냥 회사원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사원증이 출입증을 겸하고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 입구에서 출입증 겸 카드 지갑을 목에 걸고 회사로 '복귀'한다. 그 후에 벌어지는 일은 바쁘거나, 나쁘거나, 짜증 나거나, 보통 이 세 가지 중에 하나에 속하는 일이 색깔만 바뀐 공을 저글링 하는 것처럼 순환한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저녁 먹을 때쯤 간신히 다시 사원증을 찍고 회사를 '잠시' 떠난다.
일의 특성 때문인지 정말 각계각층,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 만난다. 하는 일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데 그 어느 누구도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심지어 종교인이나 무속인도) 부처님의 말대로 인생은 고해(苦海)의 바다를 해쳐나가는 것과 같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면서 그런 모습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무 일 없이 괴로워지고는 한다. 그리고 그 괴로움의 원인은 이놈의 직장 때문인 듯싶어 안 그래도 불만족스러운 회사가 더욱 싫어진다.
그런데 갑자기 "당신, 이거 그만두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라는 말이 어디선가 들려온다. 아직 신경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낮술을 한 것도 아닌 것을 보니 분명 마음의 소리임이 분명하다.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두 손가락으로 사원증을 만져보니 긴고아(삼장법사가 손오공이 말을 듣도록 하기 위해 손오공의 머리에 씌운 금테)가 아니라 구원의 밧줄처럼 느껴진다. 손오공처럼 괴력도 없고 변신술도 쓰지 못하고 불사의 존재가 아닌 내 재주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원증'이라는 아이템이 있어야만 하는 현실을 스스로 받아들인 것이다. 손오공이 삼장법사에게 속아서 긴고아를 쓴 것과 다르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 안도감은 하루의 대부분은 사원증이라 쓰고 긴고아라 읽는 이것과 함께 하기 때문에 원하는 삶을 '어느 정도'까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정확히 말하면 저 사원증이 없어도 내가 만났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다른 색깔의 긴고아에 구속된 상태로 다른 곳에서 일할 뿐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말 괴로운 순간이 있다. 그러나 괴롭지만은 않다. 이 두 문장이면 적어도 오늘 하루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