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커피, 같은 커피잔 하지만 다른 맛이었던
단 하나의 차이, 여유라는 말의 무게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 정신없이 일하다 집에 오고 잠깐 잠들었다가 다시 출근. 직군이나 업태는 다르겠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이 보이고 그보다 먼저 일요일은 지나가버렸다.
그런 삶에 조금이라도 반란을 일으켜보고자 어지간하면 주말에도 너무 늦게 일어나려고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물론 빨래, 청소, 집정리 등의 현실적인 일들이 나를 걷어차며 일어나게 만드는 상황도 있다). 간신히 지난 일요일도 적당한 시간에 눈을 떠서 커피 한잔으로 주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일요일 아침의 커피 한잔은 금요일에 마셨던 커피 한잔과, 혹은 다가올 월요일에 마실 커피 한잔과는 맛과 무게가 달랐다. 물리적으로는 동일하겠지만 두 손가락으로 느껴지는 온기와 촉감이 다르게 다가온 이유는 단 하나, 그저 오늘이 쉬는 날이기 느낄 수 있던 여유로움 때문이었다. 출근길이 없는 하루, 사람에게 시달리지 않는 하루,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가하지 않는 하루. 그런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에 매일 같이 접하는 물건의 감각까지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일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라 '하루'라는 삶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일밖에 없을 것이라는 운명이 내 기분부터 느껴지는 맛까지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니. 역시 직장 생활이야말로 만악의 근원이다.
내일도 반복될 정신없는 하루 속에서도 짧지만 이런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건 솔직히 자신 없다.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보자. 하루의 한 조각만큼은 지난주 월요일과 다른 모양으로 맞춰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