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싶었던 것은 작은 달달함과 약간의 웃음뿐
전해주는 손끝에는 그 어떤 가치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주고 싶은 마음밖에는
어쩌다 보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당연히도 그쪽은 나를 영~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또 어쩌다 보니 그 사람과 연락정도는 하고 지내게 되었지만 전해지는 온도는 사람이 빠지면 5분 만에 사망한다는 한겨울의 대서양 바닷물보다 조금 따뜻한 느낌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손끝에 감각이 없는 것을 보니 이미 동상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냉랭함에도 불구하고 마음만은 아직 36.5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마음이 간신히 체온을 유지하고 있던 어느 날, 편의점을 들렸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풍을 보았다. 정식 명칭은 '미니돼지모양츄잉캔디'라고 하던데 내 눈에는 그냥 귀여운 돼지였다. 두 손가락으로 집어보니 엄지손가락 한마디보다 조금 큰 크기에 무척이나 귀여운 녀석이었다. 아마 순간적으로 '꿀꿀'이라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 또는 환청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떠오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었다. 이 작은 아이템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그 사람에게 전내주면서 '꿀꿀'이라고 작게 외쳐보고 싶었다. 그래서 돼지 한 마리를 주머니에 방목하고 다니다가 그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서부의 총잡이처럼 신속하게 주머니에서 거닐고 있던 돼지를 꺼내 들어 그 사람에게 "쨘'하는 말과 함께 "꿀"이라고 한마디 했다. 다행히도 근처에는 나와 그 사람밖에 없었다. 어찌나 다행이던지.
그 사람은 그냥 한번 웃고 나서 돼지를 집어 들더니 자기 갈길을 갔다. 내심 선톡이라도 기대했지만 아무 톡도 오지 않은 것을 보니 추워지는 날씨와 함께 여전히 그 사람의 마음은 대서양의 바닷물 같은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꿀꿀"이라고 해야 하는데 "꿀"이라고 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냥 반복되는 하루, 남 좋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하루, 서로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하루, 그런 하루 중에 아주 일부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사소한 마음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을 느껴서 좋았다.
언젠가부터 모두가 혼자가 되는 것이 좋다고 외치는 세상이 되었다. 혼자도 좋다. 자유롭고 책임질 일이 없어서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내 삶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고 아주 약간의 단맛이 느껴지는 추잉껌이 들어있는 작은 돼지 한 마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과 함께 진짜 달고 맛있는 무언가를 맛봤을 때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