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저 불안한 마음으로 미래를 향한 시도라는 터널을 지날 뿐이다
한 손가락으로 차트를 위아래로 올리며 내일 장을 기다리는 그 친구의 목소리에는 희망과 기쁨, 그리고 불안감이 균형을 잃은 듯 흔들리며 섞여있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친구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서로 일상의 이야기와 기쁨과 슬픔, 고민을 나누던 도중 친구는 내일은 오래간만에 연가라서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직장인이 출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라는 기쁨은. 그런데 그다음에 이어지는 친구의 말은 의외였다.
"내일 아침 6시 반에 미국장에서 뭐 좀 할 게 있어서 늦잠은 못 잘 듯싶네, 너도 주식 좀 해. 한국 주식은 별로라고들 하고 나도 그래서 미국 주식하는 거야"
이 말을 하는 그 친구는 그 순간 자신의 주식 차트를 나에게 보여줬다. 지금 당장 주식을 하는 이유야 지구에서 명왕성까지 걸어가면서 설명해도 다 못할 만큼 많다고 들었다. 직장인으로서 간신히 버티는 내 미래가 한없이 불안하고 가끔은 견딜 수 없이 처량한 것도 안다. 고령화 시대에 도저히 국가나 혹은 다른 존재가 내 미래의 삶을 보살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거의) 확신한다.
그럼에도 미래를 위한 투자는 저축 외에는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그냥 월급이 들어오면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적금, 그게 내 미래의 노후를 위한 자본주의적인 유일한 준비다. 비자본주의적인 준비는 글쓰기 연습이다. 계속 쓰고 그걸 쓰기 위해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내 느낌을 언어적으로 정리해 보려고 노력은 한다. 그걸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라고 근거 없는 믿음으로 버틸 뿐이다.
그다지 영특하지 않지만 나라고 주식의 수익률이 적금보다 좋다는 것을 모르지 않고, 장이 좋을 때 클릭 몇 번으로 몇십, 몇백을 버는 광경에 눈이 가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 길은 선택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하나뿐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구멍은 너무 큰 구멍이라 거기 빠지면 다른 모든 것을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도 못 하게 피곤한 직장인으로서 생활하다가 오래간만에 늦잠을 잘 수 있음에도 기꺼이 어두운 새벽에 눈을 뜨게 만드는 그 마력(魔力), 그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불리는 검은 구멍의 힘이다.
그 구멍은 단순히 힘이 강한 것뿐만은 아니다. 너무 크고 깊어서 다른 모든 관심사를 빨아들이고 돈이 되지 않는 무언가의 가치를 한없이 가늘고 희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매 시간, 아주 짧은 순간, 그 순간이 새벽이라도 차트를 봐야만 하기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영화를, 다른 무언가를 할 시간은 뒤로 밀리는 것이다. 내 친구를 포함한 그 모든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바쁘게 산다. 퇴근하고 나서도 돈공부를 해야 하니까.
이렇게 말하면 내가 그들보다 도적적으로 우월하다거나 혹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나는 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빵점이고 매시간마다 차트의 등락에 따른 심적 부담을 견디면서 하루, 이틀, 일 년을 견뎌낼 멘탈의 소유자가 아니라서 그 구멍 밖에서 쳐다만 볼 뿐이다.
하지만 불안하긴 해도 불행하진 않다. 누구도 모르는 미래라는 불확실성의 어둠이 내리 앉은 터널을 나만의 확신을 가지고 한 발짝씩 걸어 나가는 이 삶이 아직까지는 견딜만하다. 적어도 이번주에는 성공했다. 이렇게 조금씩만 나아가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터널 밖에서 어떤 광경이든 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