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다
잔디 위에 앉은 서리는 이제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였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이 어긋나게 전달되는 것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달리기를 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만 가고 있다. 새해가 다가오니 나이는 들도 체중도 늘고 주름까지 늘면서 깊어지는데 친구, 체력 같이 좋은 것들은 줄어만 간다. 그래도 떠나가는 것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새벽 아침, 공원을 달린다.
그날의 아침 공기는 유달리 차가웠다. 겨울이 왔다는 실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트랙 옆에 깔려있던 잔디 위에는 서리가 앉아 있었다. 두 손가락으로 잔디를 스쳤을 때 느껴지는 서늘함과 미끄러움은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느끼게 해 줬다. 아, 정말로 겨울이 왔구나.
그러나 겨울은 오지 않았다. 적어도 이번주는 아니었다. 겨울이 왔다는 나의 단정을 무색하게 이번주는 내내 따뜻함이 함께 하는 날들이었다. 밤에 조금 쌀쌀했지만 도저히 춥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겨울이라는 계절의 색을 느낄 수 없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서리 앉은 잔디를 봤을 때, 그리고 달력을 봤을 때, 나는 겨울이 본격적으로 왔다고 확신했다. 이때쯤, 이런 타이밍이면 겨울이 온 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확신은 빗나가 버렸다. 나의 예측이 허술했기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라는 것이 예측을 빗나갈 수밖에 없을 만큼 크고 복잡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고 달력이라는 몇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도구를 가졌음에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무언가를 예측하는 것은 얼마나 위태로운 행위인 것인가.
바다 건너 있는 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니 손으로 만질 수 없고, 화면으로만 확인 가능한 숫자의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내 주변은 그렇다. 나야 보이는 것도 틀리는 인간이니 그런 세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세계가 무섭기도 하고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등락을 맞출 능력이 없기 때문 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 삶은 계속된다. 곧 돌아오는 내년에는 틀린 이유는 모르지만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틀렸을 때 너무 큰 타격을 입지 않는 예측의 세계에서 조금씩 나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