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릿 (2016)
최동훈 감독의 2006년 작 '타짜'는 화투판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비열하고 처절한 모습을 냉정하면서도 무척이나 재미있게 그려내면서 도박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만한 작품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최국희 감독의 2016년 작 '스플릿'도 도박판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이 영화에서는 볼링을 승부를 겨루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박이라는 냉혹하고 어두운 세계를 다루고 있음에도 작품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밝고 따뜻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데다가 유머도 적절히 섞여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유쾌한 가족 영화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실제로 주인공인 철종(유지태)과 주연(이정현), 그리고 영훈(이다윗)은 도박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해관계를 위해 뭉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유사 가족에 가까워 보이고요.
바로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부가 스플릿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타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돈과 폭력을 바탕으로 배신과 결합을 반복한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인 철종과 주연은 인간적으로 무척이나 선한 데다가 비틀린 부분은 있어도 사악한 인물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세상은 도박판과 전혀 다른 곳처럼 다가옵니다. 이런 인물의 모습은 두 배우의 연기력이 돋보일 수 있는 상황에서 조차 평면적인 인물로 머무르게 만들면서 작품의 긴장감을 떨어트렸는데, 대조적으로 타자의 주인공인 고니(조승우)와 정마담(김혜수)은 그 자신이 도박의 피해자인 동시에 폭력과 사기를 일삼는 가해자이기 때문에 이질감 없이 도박이라는 세계에 녹아들었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오가며 생동감 있게 도박의 세계를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들과 대척점에서 폭력과 협박을 일삼는 사람들은 타짜에서 빌려온 것처럼 너무나 도박과 잘 어울리는 인물들이어서 주인공들이 더욱 도박판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특히 출연 분량에 비해 무척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권해요 씨는 도박이라는 세계의 규칙을 알려주는 것 이외에 별다른 역할이 없었음에도 입체감을 획득합니다. 그런 모습이 같은 도박꾼인 철종이 도박의 세계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에 호소하는 모습과 무척이나 대조되기도 하고요.
영화 초반부에 주연은 다른 도박꾼에게 판돈이 다 떨어지면 도박은 끝이고 "가리(외상)는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정작 이 영화가 도박의 세계를 완성시키는데 부족한 판돈을 눈물로 채우려고 했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철종과 주연의 가슴 아픈 사연과 영훈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질 수 있겠지만 그런 사연들은 도박판처럼 손목이 잘릴 때 비명은 질러도 인정에 호소하지는 않는 인물들이 악귀처럼 춤추는 곳에서 하기에 적절해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최근 본 다른 한국 영화들, 심지어 몇억 달러로 제작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도 그와 같은 부절함이 깊숙이 침투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눈물을 가리처럼 쓰면서 동시에 관객에게 재미 대신 억지스러운 감동을 주기 위한 보험으로 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