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베프 A는 또 다른 친구 B와 C에게 늘 불만이 많다. 우리 넷은 이른바 꼬치친구 내지 불알친구로서 알고 지낸 세월이 오래됐다. 나와 A는 연락도 자주 하고, 서로의 하소연도 자주 들어준다. 반면 B와 C는 나와도 그렇고, A와도 그 정도의 소통은 없다. 우린 어린 시절을 재밌게 지냈고, 젊은 시절에는 계모임도 하며 자주 어울렸지만 나이가 들수록 각자의 직장생활, 아이들 양육, 취미 생활 등으로 점점 만나고 연락하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A는 좀 예민하고 섬세하며 소심한 스타일. 자기가 힘들 때 B에게 연락했는데, B가 너무 무심하게 반응한 것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괘씸해한다. 그 서운함이 안 풀리는 모양이다. "B야, 요새 OO회가 맛있다는데, 내가 너희 동네 함 갈까?" "그 회 맛없다. 오지 마라" 이랬다는 거다. 당시 A는 직장 문제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고, 위로도 받을 겸 바다가 있는 B가 사는 지역으로 가려고 맘먹고 전화했는데, B가 단칼에 거절했다는 거다.
B의 성격을 아는 나로서는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거라 해석한다. B는 섬세하진 않지만 의리가 있는 스타일이다. 아마 "그 회 맛없다. 이번 주는 내가 시간이 안되는데" 이런 식으로 말했을 거다. 나라면 상처 받지 않고, "그러면 언제 시간 되노? 시간 맞춰 보자" 이런 식으로 말했을 것 같다.
반면 내가 A의 그런 전화를 받았다면 아마 "그래, 와라. 맛있는 거 묵자" 이랬을 것 같다. 말하자면 나는 A도, B의 입장도 다 이해가 된다. 그들이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들이 아니며, 그들의 성격의 특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친구라면 평상시에 자주 연락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A는 B를 탓한다.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때 그 사건의 서운함으로 A 역시 B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B는 최근에 자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애견 관련 학과에 진학했던 큰아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됐다. 또 어머니가 치매가 심해져서 나름대로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A는 전혀 모른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술자리를 하면 B를 많이 다그친다. "니는 새끼야, 그라면 안되지. 내가 그때 얼마나 힘들어가꼬 전화했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B의 입장에서는 A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기만 하면 자기를 몰아세우고 나쁜 놈을 만드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A도 B의 속사정은 모르니, 내가 볼 때는 피차일반인 것 같다.
"내가 요즘 이래서 힘듭니다" 하고 어디 가서 말하기가 참 쑥스러운 나이다. 위로해달라고 일부러 티 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런 나이에 알아서 안부를 챙겨봐 주는 이가 있으면 참 고맙다. "그래, 치매를 앓는 부모님 때문에 참 힘들지", "자식 일이 맘대로 안 풀려서 속상하지. 내 막내도 그랬어" "오! 장남이 좋은 데 취직했네, 정말 축하해" 이런 말들 말이다.
상대를 원망하기 전에 상대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관심과 애정을 가지다 보면 나를 서운하게 했던 행동들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다. 인간성이 아주 아닌 사람은 예외지만. 그래서 B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사라지지 않는 나의 베프 A의 모습이 좀 안타깝다. 그렇다고 내가 A는 아니니 뭐라 할 순 없다.
나에겐 B와 C도 소중하다.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B는 내가 정말 어려울 때 50만 원(그 당시엔 큰돈)을 선뜻 빌려주고, 그 돈은 마음으로 준 돈이니 받지 않겠다고 했다. C는 내가 컴퓨터 배우러 서울에 올라갔을 때 자신의 자취방을 허락해 준 친구다. 이렇게 과거의 큰 고마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지금 내게 좀 서운하게 해도 웬만하면 그들을 이해하려 한다. 다들 가장의 역할을 하느라 고단하고 바쁘니까. 그리고, 나 또한 그들에게 그리 잘한 게 없으니 말이다.
윌슨이란 어플에서 연애상담을 해주다 보면 자신만큼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 힘들다는 사연이 제법 있다. 쌍방이 동일한 정량의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쁜 놈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내가 더 사랑한다면 내가 조금 더 이해하고 배려하면 된다. 1을 주면 1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현명한 생각이 못된다.
관심과 애정, 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내가 하루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정으로 그를 위해 주려다 보면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내가 부족한 걸 안다면 상대를 쉽게 탓할 수 없다. 내 상처를 보듬어 달라고 아우성치기 전에 상대의 삶에 관심을 가져보자.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