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의 약속은 잘 지키면서 그걸 잊고 살았네
이런 생각을 해봤다. 최저시급을 주고 현재 생계를 위해 하는 일(알바)과 미래를 위해 하는 일(피아노 연습 등) 중 선택하라면 무엇을 택할까?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이다.
취업은 정해진 시간 동안 성실하게 일하겠다는 회사와의 약속이다. 정해진 시간과 성실함 이상을 요구하는 회사도 많다.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뒷일을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채 허둥대기도 하고, 노란색 신호등에 불나방처럼 과속을 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애쓰는 걸까?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신용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들로부터 수군거림이나 욕 듣는 걸 무지 싫어하니까.
이렇게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불쌍할 정도로 노력을 한다. 그렇다면 나와의 약속은?
지난 50 평생 동안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명확한 기억이 없다. 약속을 했었나? 단순히 열망하기만 했었나? 출근시간 9시 같이 구체적인 약속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아내나 애인에게 하는 "조금만 기다려 봐. 머지않아 호강시켜 줄게" 같은 말처럼 막연한 꿈들과 희망만 많았던 것 같다. '호강'이란 말이 100평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두고 살게 해 주겠다는 건지, 세계일주를 시켜 주겠다는 건지, 한적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게 해 주겠다는 건지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미래가치에 투자하지 않으며 부자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주식의 가치투자가 있겠다.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는데, 왜 나의 미래가치에 투자하지 않는가? 자신과의 약속은 미래가치에 투자하는 것이다. 약속이 없으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간다. 시간이 타이머의 밀리세컨드마냥 잔인하고 쏜살같이 지나간다.
타인과의 약속을 본능적으로 우선시하는 것처럼 삶의 모든 것이 타인이 기준이 된다. '외로움'이란 것도 내 곁에 타인이 있나 없나가 기준이다. 내 곁에 우선 내가 있다. '외롭다'고 말하기 전에 우선 나를 돌아보고 나와 사귀어야 한다. 자존감을 말할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중심이 서 있지 못하면 연인이나 친구 관계도 결코 바람직하게 나아갈 수 없다고.
나와의 약속이 있기나 했었나? 있었다면 애써 지켰던가? 다시 상기시켜 보자. 삶의 첫 번째 약속은 당연히 자신과 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나의 미래가치란 자아실현, 화목한 가정, 돈독한 우정, 건강 회복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저 되는 것은 없다. 주식 투자도 공부를 해야 한다.
나의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예상하고 자신과 약속을 하자. 물론 교과서처럼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계속 수정하더라도 당연히 약속을,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10년 후의 내 모습이 현재와 똑같고, 그걸 내가 지겹게 느낄 거라면 날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하루하루가 반드시 필요하다. 출근 시간을 지키려는 노력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지각을 안 하겠다는 건 외면의 약속이지만 자신과의 약속은 내면의 약속이다. 껍데기의 삶만 살아서야 되겠는가.
운이 따라야 할 영역까지 포함해서 과장되고 부담스럽게 약속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는 게 중요하다. 미팅 시간을 정할 때 씻는 시간, 옷 입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을 다 고려하듯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자신과 약속을 하자.
약속이 없어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삶보다 지킬 약속이 있는 삶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고, 결국 소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