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자아도, 진정한 자아도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내가 만들어간다
청소년기를 중요한 자아 형성의 시기라고 한다. 고백하건대 나의 경우는 평생이 자아 형성의 시기인 것 같다. 진정한 자기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것은 마치 인생의 재료를 보는 안목과 경험이라는 시간, 재료를 조리하는 스킬들이 어우러져 완성하는 훌륭한 요리와 같다.
요리라는 것이 훌륭하지 않아도 한 끼를 때울 수는 있다. 삶도 제대로 된 정체성의 정립 없이도 잘도 흘러간다. 아무 일도 없는 듯 해가 뜨고 진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요리에서 진정한 맛을 보면 그동안의 요리가 얼마나 형편없었는가를 알게 되듯이 진정한 내 모습과 방식을 발견하게 되면 그동안 내 삶의 조타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닫고는 깜짝 놀라게 된다.
우리가 남들로부터 주로 듣게 되는 '못한다'와 '잘한다'는 말. 이 두 말에 다 함정이 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꽤 잘했다. 당시 학급 정원은 60명이었고, 내가 다닌 시골 중학교는 6반까지였으니 한 학년의 정원은 360명 정도였다. 그중에 6등을 두 번 한 적이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머리가 좋은 놈으로 통했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중에는 나보다 시험 성적이 좋은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두 학생 집단을 두고 실험을 했는데, A 무리에게는 지능에 대한 칭찬을 하고, B 무리에게는 끈기나 노력에 대한 칭찬을 했다고 한다.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실험을 진행할수록 A 무리의 결과가 안 좋게 나왔다고 한다. A 무리에 속한 학생들은 무의식 중에 자기의 지능을 증명해 보이려고 애쓴다. 따라서 문제를 단계적으로 끈기 있게 해결해 나가기보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서두르게 되고, 결국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반면 B 무리는 자신의 노력과 끈기에 의해 문제가 단계적으로 해결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동일한 패턴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다음 문제를 대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대한 성공 확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정말 머리가 좋은 줄 알았다. 마치 글 좀 쓰는 줄 알았는데 브런치에 와보니 조회수로나, 구독자 수로나, 라이킷 수로나 월등한 작가님들을 보면서 하하 헛웃음을 짓는 것처럼, 지금은 당연히 겸손해졌다.
그 실험의 A 무리 학생처럼 나는 잘 나가던 학창 시절의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빨리 성공하고 싶었고, 나보다 더 평범하거나 못났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의 성공을 질시했다. 마음만 먹고, 열정을 불사르면 당연히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삶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으면 짜증스러웠고, 운명을 원망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어쩌면 이런 나의 자만과 어리석음은 학창 시절 선생님과 친구들이 해 준 '넌 머리가 좋다'라는 칭찬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남들이 나를 칭찬하는 '잘한다'는 말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그 말에 붕 뜨기보다는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것만이 진정한 결실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렇다면 '못한다'의 함정은 무엇일까? 나는 '한 가지 일을 오래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한 직장에 오래 버티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직업과 직장을 전전했으니 남들 눈에 당연히 그렇게 보였으리라. 하지만 나는 '컴퓨터'와 '자영업'이라는 어느 정도 맞는 일을 찾았을 때는 10년이 넘게 그 일을 했다. 물론 이 '어느 정도'가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전의 일들은 만족도가 30%도 안됐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게 맞는 일을 찾지 못해서 헤맸을 뿐이다. 한 가지 일을 오래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콘텐츠 제작 - 현재는 주로 작곡과 글쓰기 - 을 하는 지금이 나는 너무 만족스럽다. 진즉에 나는 이런 일을 했어야 했던 거다. 물론 아직 수입은 미미하다. 하지만 월말이면 저작권 통장에 자동으로 찍히는 숫자들을 보면 너무너무 기분이 좋다. 벚꽃 연금을 받는 장범준만큼 좋아한다고 해서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잘한다'는 정의든, '못한다'는 결론이든 내가 부여잡는 잘못된 정체성은 나에 대해 쉽사리 내리는 타인의 평가와 입방아들이 원인이다.
내가 정말 무엇을 잘하고 즐거워하며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정확히 아는, 올바른 정체성 또한 나 혼자서 세워가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경험과 지혜(책 등), 응원 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핵심은 결국 내가 깨달아야 한다. 이런 깨달음이 그리 수월하게 주어지는 건 아닌 듯싶다. 현재의 내 문제점을 인정하며 나 자신과 대화를 해야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알기를 원해야 한다.
함정이란 '위장한 구덩이'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함정을 알지 못하면 껍데기의 삶만 살다가 갈 수도 있다. '못한다'는 말에 고개 숙이지 말고, '잘한다'는 말에 고개를 빳빳이 세우지 말자. 그런 말들은 부질없다. 정확한 나를 알고, 어떻게 해야 내가 점점 더 행복할지를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 요리는, 음식은 잘나고 못나고가 아니라 맛있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