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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Dec 26. 2021

님아, 그 옵션을 쓰지 마오

옵션이란 선택사항. 쓸 수도 있고, 쓰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주 5일 근무로 주어진 이틀간의 휴일에 우리가 옵션으로 쓸 수 있는 건 넷플릭스, 독서, 여행, 친구, 잠, 식도락... 하지만 쓰지 않는 게 나은 옵션은 누구보다 여러분과 내가 잘 안다.


구내식당에서의 자율배식. 반찬을 얼마나 담을 것인가? 나는 이 사소한 - 아니, 먹을 것이니 사소하지 않다 -  욕심도 버리지 못해서 매번 많이 담고, 결국 남긴다. 하지만 나뿐만이 아니다. 한 테이블에서 식사한 동행들을 봐도 거의 대부분 잔반을 남긴다. 많이 담을 수 있는 옵션을 쓰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아내의 한마디에 갑자기 짜증이 확 솟구친다. 가시 돋친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젊은 시절에는 곧잘 입 밖으로 내버렸지. 왜 그랬을까? 쓰지 않으면 좋았을 옵션인 것을. 험한 한마디 내뱉기는 숨쉬기보다 쉬워도 아내가 받는 상처는 길고 길다는 걸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


나는 잘 이해가 안 가지만 나한테 서운한 사람들이 있다. 왜?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그다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사람 마음은 얼굴 생김새처럼 다들 다르게 생겼으니 그럴 수 있겠지. 나만의 생각하는 방식이 있듯 그에게도 그만의 방식이 있고, 그 방식으로 바라봤을 때 내가 맘에 안 드는 거겠지.


그런 사람들에게 한번 더 다가가서 손을 내미는 옵션. 이 옵션은 쓸까 말까? 정답은 없겠지. 나는 한해가 넘어가는데 꿍하고 있는 것도 싫고, 이런 상태를 마음에 오래 두는 걸 못 견뎌하는 스타일이라 한번 더 손을 내민다. 한번 더 내민 손에도 무반응, 혹은 시큰둥하면 내 기분이 더 나빠지려나. 그것까지 감안하고 어쨌든 나는 이 옵션을 쓴다. 내년에 내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사과는 일찍일찍 하는 게 좋다.


한 해 동안 내게 신경 써 줬던 사람들. 자기 삶을 살기도 바쁜 세상에서 크든 작든 한두 번이라도 순수하게 내게 마음 써 준 사람들은 당연히 고마운 존재들이다. 이들에게 감사 표시를 할까 말까. 모른 척하고 은근슬쩍 한해를 넘기는 옵션도 있는데. 그렇게 한다고 딱히 나를 비난할 사람들도 아닌데. 그래도 이 옵션은 안 쓰기로 한다. 약간 충동적으로 한해 동안 고마운 사람들, 챙겨줘야 할 사람들에게 카톡 치킨 선물을 쏘다 보니 금액이 OO만 원을 넘어 버렸다. 박봉에 과하긴 하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이니. 챙기는 게 훨씬 마음 든든하다.


글을 쓰지 않는 옵션, 피아노 연습을 안 하는 옵션, 작곡을 접어버리는 옵션. 이런 옵션은 쓰기 쉽다. 아무것도 안 하면 되니까. 그 시간들을 여러 잡다구리로 때워버리기는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이 옵션도 쓰지 않기로 한다.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나답게 살기 위해서. 나이가 이미 들었고, 더 들어가고 있으니까.


황색 신호에 달리는 옵션, 겨울이라 운동 1도 안 하는 옵션... 쓰지 않으면 좋을 옵션들을 생각해 보라. 그 옵션들을 쓰지 않음으로써 우리 삶이 조금 고상해진다. 우리 인격이 더 올라간다.



나는 이 옵션을 지금 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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