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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시의 효과

인간에 대한 기준을 완화하고

by 밤새

별로 마음에 안 들지만 아주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닌 사람. 날마다 얼굴 봐야 해서 담쌓고 지낼 수도 없는 사람.


그렇게 가까이 지낼 필요는 없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지내기는 어려운 사람들. 어쩌면 직장에서 부대끼는 동료들이 대부분 이런 유형의 인간관계일 것이다.


맛집 선택 기준이 구글 평점 4점 이상인 것처럼 사람에 대한 기준도 그 정도로 높거나 까다롭다면 사회생활이 피곤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마음에 안들 것이기 때문이다.


먹는 걸 주는 신공은 아내에게 배웠다. 첫 데이트 때 직접 만든 찐빵에 내가 넘어갔듯이 아내는 원래 잘 베푸는 스타일이다. 반면 나는 세상 험한 꼴을 너무 일찍 봐서 그런지 베푸는 데 꽤 인색한 편이었고 심지어 내가 그렇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아내가 일하는 매장이 소규모 조직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두 개 사면 하나 주고 올 정도로 아내는 베푸는 데 익숙하다. 직속상관한테 지나치게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아부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먹는 걸 잘 주는 아부는 그냥 귀여운 아부랄 수 있겠다.


나도 아내에게 배워 이 신공을 사회생활에 써먹고 있는데 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나에 대한 비난을 감소시키거나 이미지 쇄신 등의 목적이 있더라도, 순수한 동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생활에서는 이 신공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나 한국사회는 먹는 것 끝에 마음 상하는 문화가 강해서 말이다.


이런 계산이 들어가지 않은 사이에서도 밥보시(아내는 먹는 거 베푸는 걸 이렇게 표현한다)는 마음을 여는데 효과가 있다.


코로나로 깨지긴 했지만 직장인밴드를 할 때 밥과 술을 잘 사 주는 형님이 있었다. 내가 뭐 밥과 술을 못 사 먹을 형편이라 얻어먹는 건 아니지만, 그 형님의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웠다.


이후에 나도 자연스럽게 그 형님 부탁이라면 열일 제치고 도와드렸고 지금도 우리는 잘 지낸다. 맛있는 게 있으면 꼭 연락을 주신다.


내 세계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불속에 숨는 신공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런 사소한 베풂도 일종의 배려라 할 수 있는데, 내가 배려해야 상대의 배려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가 있는 듯하다.


인간관계가 그런대로 원만해야 스트레스를 덜 받고 내 세계를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


날마다 최고의 맛집에서 최고의 식사만 할 수 없듯이 마음에 꼭 맞는 인간관계만 가지려는 것도 지나친 욕심인 것 같다. 내 마음 자체가 심하게 변덕스러운데 맘에 꼭 맞는 사람만 일상에 존재하길 바란다니.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인간에 대한 기준의 완화가 필요하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아니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아니고'라는 날카로운 기준보다는 일단은 그 사람, 그 삶의 가치를 인정, 수긍하고 들어가자.


물론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 등 예외적인 경우는 제외다.




가까운 사람과는 더 친밀해지는 효과, 덜 가까운 사람과는 원만하게 적당한 거리로 지낼 수 있는 효과. 밥보시의 효과다.


어차피 모든 먹을거리는 자연의 산물, 신의 선물이다. 욕심내서 혼자 꾸역꾸역 먹어봐야 비만을 비롯한 성인병 밖에 더 걸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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