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엄마, 아빠 옷 사 입으라고 40만 원을 준 적이 있다. 막상 대형몰에 가서 이 매장, 저 매장 둘러보니 가격이 꽤나 비쌌다. 그래서 아내는 자기 옷을 포기하고 전액을 내 옷 사는 데 쓰라고 했다.
40만 원은 우리한테는 큰돈이다. 그날 나는 한 매장에서 남방, 바지, 패딩 각 하나씩을 사는 데 무려 53만 원가량을 썼다.
사서 입어보니 그 옷들은 그 가격만한 가치가 없었다. 매장 점주의 화술에 넘어가서 계획에 없던 과한 지출을 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날의 구매 실패는 메이커나 가격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아들이 준 돈을 들고 무작정 몰에 간 게 원인이었다.
이렇듯 기준이 없다는 것은 언제든 훅 치고 들어오는 외부 환경에 요동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입이 약간 여유가 있고, 주변 지인이 보험 가입을 계속 권유하면 평소에 세워둔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인정에 이끌려 가입하게 된다. 이 보험이 10년 후에 원금의 절반도 못 받고 해약할 보험이란 걸 모른 체 말이다.
신용카드 사용에 대한 기준이 없으면 수입에 비해 과도한 수의 카드를 소지하게 되고, 그 카드들은 좀벌레처럼 내 수입을 갉아먹어서 결국에는 내 삶 전체에 큰 타격을 입힌다.
꿈에 투자할 시간이 없다고 늘 불평하는 사람도 시간 활용에 대한 기준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막상 시간이 주어졌을 때 어영부영 시간을 허공에 날려 버린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지 1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잔반을 많이 남긴다. 지구온난화 앞에 부끄러운 사람이다. 밥과 반찬을 이만큼만 먹겠다는 기준(마지노선)이 없다 보니 음식이 보이는 대로 자꾸 식탐에 이끌리게 된다. '모자라면 어쩌지' 하면서 자꾸 더 담게 된다.
특히 나는 위장이 안 좋아 소식을 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위장이 안 좋으니 소화가 잘 안 되는 육류는 조금만 먹고, 가스가 잘 차는 종류의 생야채는 삼가고... 이런 기준들이 있어야 식탐의 바다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다.
인간관계. 연애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남자(여자)는 안돼!' 하는 기준이 없으면 내게 좀 잘해주는 남자(여자)에게 쉽게 넘어가 버린다. 상대방이 희롱성 유혹을 하는 것인지, 심지어 데이트 폭력 성향의 사람인지도 모른 체 쉽게 마음을 줘버릴 수 있다.
확실하게 데인(상처 입은) 경험이 있다면 적어도 그런 스타일의 사람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생길 것이다.
직장 등 사회적 인간관계에서도 여러 인간 군상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없다면 호구가 될 수 있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그래서 기준이 중요하다. 꼰대가 되기 위한 기준이 아니다. 탐욕과 낭비와 낭패와 혼돈의 바다에서 헤매지 않기 위한 지혜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