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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y 25. 2022

중년남자 B의 눈치 인생

1. 마눌님

마눌님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퇴근 후 내 컨디션도 영향을 받으므로 신경을 쓰고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나 오늘 몸이 안 좋으니 저녁은 치킨 시켜" "네~(점심 반찬 닭볶음탕 먹었는데)", "설거지는 니가 해, 과일 좀 썰어, 차 좀 타 줘" "네네네~(곡 작업해야 하는데, 8시간 일하고 음악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저녁시간인데)"


2. 독립한 자식들

잔소리하고 싶은 게 꽤 있어도(씀씀이가 너무 헤프네. 그러면 나이 들어 아빠처럼 가난하게 산다고!, 아직도 그렇게 자주 엄마한테 손을 벌리면 어떡하니? 성인이 됐으면 니 힘으로 해결해야지!) 입을 다문다. 평화를 위해. 결과적으로 내가 조용히 있어야 잘 됐던 경험도 있고. 목소리 듣고 싶어 연락하려다가 거의 참는다. 연애하랴 일하랴 바쁠 텐데 전화 자주 하면 꼰대 아빠 될까 봐.


3. 어머니

상당히 보수적인 어머니(식당 가서 맘에 안 들면 다음에 안 가면 되지. 따지긴 왜 따져. 엄마, 아닌 건 그래도 말을 해줘야 개선이 될 거 아니에요)와 작년까지만 해도 꽤 부딪혔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커지는 꼴이 볼썽사나워서 지금은 잔소리하시면 잠자코 있다. 아버지는 치매 초기라 그런지 통화도 지극히 짧게 하시고, 내가 자주 찾아뵙지도 않으니 눈치 볼 게 없어진 게 한편 안타깝기도 하다.


4. 직장상사

상사의 그날 기분에 따라 업무가 좀 미비해도 무난하게 넘어가기도 하고, 열심히 했는데도 욕을 먹기도 한다. 그래서 상사의 기분을 어느 정도 살피는 건 일상의 생에 있어서 필요하고 중요하다. 사의 권력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는 종자지만, 부하직원이라 아니꼬운 꼴은 또 꽤 겪어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5. 내가 좋아하는 람들, 친구들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한테 한두 번 연락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오지 않으면 다시 연락하기가 망설여진다. 바쁜 게 아닐까. 자꾸 카톡이나 전화하면 귀찮아하지 않을까. 이건 상대에 대한 배려가 맞지만 지나치면 또 소심함이겠지.




이렇게 중년남자 B는 눈치 인생을 산다. 사람들은 눈치를 안 봐도 되니까 애완동물을 키우는가 보다.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 안고 싶으면 안고... 물론 애완동물도 기분이 있겠지만 사람처럼 복잡하진 않으니까. 눈치 안 봐도 되니까 <나는 자연인이다>가 되는가 보다. 눈치가 꼭 나쁜 건 아니다. 적당한 눈치는 우리를 세련되고 매너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래도 때로는  머리가 하늘까지 닿도록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이 하고 싶다. 장난이 치고 싶다. 어른스러움이 갑갑하다. 원래 우리는 어른이 아니었고, 지금도 철이 덜 들었으니 진정한 어른은 아니다. 그래서 춤 배우러 가면 온통 아주머니 천지고, 악기 배우러 가면 으레 못 칠 줄 알고 설렁설렁 가르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늘 머리 자르러 미용실에 갔더니 손님을 다루는 데 아주 능숙한 미용사 한 분이 계셨다. 자기 아내에게는 무뚝뚝하게 거의 말을 안 할 것 같은 두 명의 중년 남자가 그 미용사에게는 어찌 그리 아이처럼 수다스럽게 재잘대는지... 세 번째 손님인 나까지도 쫑알쫑알 6월에 갈 제주도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하고 가게 문을 나서니 "안녕히 가세요" 외에 한 마디 더 한다. "여행 잘 다녀오세요!"


마음은 여전히 아이지만 놀아줄 사람도, 놀 장소도 없는 불쌍한 중년남자 B. 그래도 B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놀아볼 테다. 철이 안 들 테다. 철들고 성숙한 사람만 사는 재미없는 세상에 반기를 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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